ADVERTISEMENT

평화의댐 현지 르포 "10m높이 흙탕물 밀어닥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 1월 갑자기 얼음과 함께 10m 이상 높이의 물기둥이 밀려올 때는 정말 무시무시했습니다."

평화의 댐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박세준씨는 1일 "비도 오지 않는 겨울에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벽을 이뤄 솟구치면서 토사와 함께 밀어닥쳤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후 주변 주민들은 금강산댐에 문제가 생길 경우 어느 정도까지 피해가 커질지 불안해 하고 있다. 이제 금강산댐으로 인한 우려는 '안보'가 아닌 '안전'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셈이다.

1987년 북한이 금강산댐을 건설하기 시작하자 수도권에 대한 물 공격을 강행할 수 있다는 안보위기론에 따라 국민 성금 7백억원을 모아 평화의 댐을 건설했다. 그러나 얼마 뒤 수공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평화의 댐은 1단계에서 멈추고 남은 성금은 99년 국고로 들어갔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 수공의 가능성은 희박한 반면 북한이 자재난 등으로 댐을 부실시공한 것으로 우려되면서 댐 붕괴로 인한 북한강 유역의 안전이 위협을 받게 된 것. 전문가들은 그동안에도 북한의 기술력이나 자재 상황으로 볼 때 부실시공과 이로 인한 한강유역의 피해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었다.

그러다 지난 1월 갑자기 엄청난 물이 평화의 댐으로 쏟아지면서 우려가 현실화 된 것이다.

그러나 평화의 댐 하류 양구나 화천군의 주민들이 군 의회 등을 통해 건교부에 낸 질의서에 대해 받은 답변은 계속 "잘 모르겠다"거나 "특이한 사항이 없다"는 내용뿐이라고 양구군 최형지 군의원은 주장했다. 崔의원은 정부가 추정하는 금강산댐의 저수량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금강산댐의 높이로 보았을 때나 전방 근무 군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분석했을 때 최소 10억t은 넘는다는 주장이다.

10억t이 넘는 수량의 댐이 붕괴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양구 주민들은 머리에 물탱크를 이고 사는 기분"이라고 밝힌다.

한편 평화의 댐 보강공사에 자문역으로 1일 댐 현장을 방문한 이범구(미국MWH사)부사장은 댐붕괴와 관련한 경보시스템이 없는 점을 우려했다. 미국의 경우 댐이 붕괴되면 피해를 볼 수 있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1년에 한번씩 비상훈련을 실시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현장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금강산댐 하류의 화천군과 양구군의 경우, 어디까지가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는 지역인지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고석구 수자원공사 사장은 "보강공사의 방법과 강도 등과 관련해 국내외 자문진에 자문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붕괴에 따른 도미노 현상을 측정하기 위해 모형을 통한 시뮬레이션도 수행할 계획이다. 금강산댐과 마찬가지로 평화의 댐도 구조적으로는 사력댐이기 때문에 물이 제방을 넘을 경우 붕괴의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현재로는 평화의 댐에 콘크리트를 덧씌우고 돌을 쌓은 댐의 폭을 넓혀 구조적으로 더 튼튼하게 만드는 것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으나 공사기간을 감안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기술진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평화의 댐 설계와 감리를 담당했던 삼안건설기술공사 유승하 부사장도 이날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는 "금강산 댐은 두가지가 문제"라고 했다. 댐은 일반적으로 공사를 마친 뒤 물을 가둬야 하는데 금강산댐은 공사를 하면서 이미 물을 담기 시작해 안전이 의문시된다는 것. 또 댐은 지속적으로 공사를 해야 견고해지는데, 금강산댐은 공사가 오랜기간에 걸쳐 간헐적으로 진행돼 전체가 일체식으로 견고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불안하다는 것이다.

유 부사장은 "금강산댐의 위험을 막아내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으로 평화의 댐을 원래 설계 높이대로 더 쌓아 올리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우선 올 여름에는 화천댐과 춘천댐 등의 저수량을 잘 조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건교부 관계자는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평화의 댐에 보강공사를 하는 것보다 금강산댐 붕괴 우려지점에 인력과 자재를 지원해 직접 보강에 나서는 것이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혔다.

한편 금강산댐의 문제는 붕괴위험 뿐 아니라 수자원 유실도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심명필 인하대 교수는 "금강산댐으로 인한 북한강 수계의 수량 감소가 연간 3억t에서 5억t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소규모 댐 3~5개를 새로 건설해야 확보할 수 있는 수량"이라면서 "남북 협의를 통해 댐 붕괴문제뿐 아니라 수자원 사용 등에 관한 전반적인 협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화천=신혜경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