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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3金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 두달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盧武鉉)후보가 일으킨 바람은 거셌다. 지난 수년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이회창 대세론''이인제 대세론'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盧후보에 대한 폭발적 지지의 배경과 지지층이 누구인지에 대해 많은 토론이 있었으며, 이제 그 윤곽은 상당히 드러났다.

지역갈등 재생산에 불과

기성 정치권에 신물이 나 "정치판을 다 엎어버렸으면 속이 시원하겠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노풍(노무현 바람)'의 중심세력이다. 여기에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가세했다. 민주당 호남출신 의원들은 "지역에 가면 주민들이 '요즘은 정말 살 맛 난다'고 신이 나있다"고 전한다. 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호남지역 답변자의 90% 안팎이 盧후보 지지를 표하고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운동권 출신과 진보성향 사람들의 다수도 盧후보 지지쪽에 섰다. 87년 대선에서 김대중후보에 '비판적 지지'를 했던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다.

과거 DJ지지자와 진보성향 인사들은 결집도는 강하지만 50%를 넘어서는 지금의 盧후보 지지도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새정치에 대한 갈망을 촉매로 이들은 다시 결집할 힘을 얻었던 것이다. 그런데 후보가 되자마자 취한 그의 두金씨에 대한 '구애(求愛)행각'은 이런 기대와는 많이 어긋나 있다.

그가 29일 金대통령을 방문한 것은 '당의 어른'에 대한 인사차원이었다 치자. 그럼 30일 김영삼(YS)전 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을 찾은 것은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과거 YS의 공천으로 정치에 입문했기에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기 위한 차원의 방문"이라고 할 것인가.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이미 설득력을 잃었다. 盧후보 스스로 과거 민주화세력, 즉 DJ와 YS세력의 재결집을 통한 '민주대연합'방식의 정계개편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YS의 대통령 당선을 '기회주의의 극치'(『여보, 나좀 도와줘』에서)라고 비난했다. 그런 그가 13년 전 YS로부터 받은 시계를 차고 가서 YS의 비위를 맞추는 모습은 보기 민망하다.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정계개편은 盧후보가 주장했고 국민이 기대하고 있는 '지역갈등을 극복하는 차원에서의 정책정당으로의 정계재편'이 아니다. 우선 YS는 盧후보가 승계하겠다고 한 DJ의 대북정책이나 개혁정책에 대해 단 한번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적이 없다. 정책과 노선이 다른 DJ와 YS를 '과거 민주화투쟁'을 공통분모로 엮어보겠다는 것은 대선 승리를 위해 지역주의를 재생산하겠다는 것쯤으로 비춰진다. 호남에선 DJ의 후광으로 '민주당 후보'로서, 영남에선 YS의 축복으로 'DJ의 양자'란 야당 공격에서 벗어나 '영남후보'로서 표를 얻겠다는 '영호남 연합후보 전략'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충청과 호남을 엮었던 97년 대선 때 DJP연합의 변종이며, DJ정권 초기부터 추진했던 동진(東進)정책의 완성판에 불과하다. 이래서는 망국적인 지역갈등을 넘어설 수 없다. 지역감정 위에 보혁(保革)구도를 덧칠한 형태에 불과하다.

양金 고리 끊기 나섰으면

더구나 YS와 DJ가 부활하면 JP도 살아날 힘을 얻게 된다. 영·호남이 지역연합을 한다면 충청권인들 그냥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이는 3金정치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은 대다수 국민들의 열망을 저버리는 결과다.

盧후보는 이제라도 3金으로 대표되는 구시대 정치의 종식에 나서야 한다. 자신의 정책과 노선·비전을 제시하고 이에 호응하는 정치인을 모으는 것이 정도다. 그것이 'DJ당 공천으로 부산에서 몇번이나 출마한', 그래서 국민이 기성정치인과 다른 정치인이라고 믿고 있는 노무현의 본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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