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만들어 나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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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건국 이후 여러 분의 대통령이 있었지만, 아직도 온 국민의 추앙을 받는 대통령이 없다는 것은 그 동안의 대한민국의 역사와 우리의 지도자 만들기의 현주소를 말해 주는 것이다.

약점 부풀려 통째로 매도

예를 들어 이승만 대통령은 혼란과 동란 속에서 신생 공화국을 출범시키고 안정시킨 업적을 남겼다. 박정희 대통령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기는 했으나, 산업화라는 큰 흐름을 이끌어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발판을 만든 공헌이 크다. 두 분 다 독재와 무리한 집권 연장의 과오가 있기는 하나, 대한민국 역사의 중요한 시기를 이끈 거인들로서 이제는 추앙받아 마땅하다.

잘못된 면만을 부각시켜 이 분들을 부정해 버린다면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훌륭한 지도자는 찾기 힘들 것이다. 독재의 책임은 일차적으로는 본인과 핵심참모들에게 있겠지만,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도 일단의 책임은 져야 한다. 또한 바람직하지 않은 과거가 있었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우리의 과거이며, 따라서 이를 통째로 부정할 수는 없다.

공적보다 약점을 더 부각시키려는 우리의 경향이 우리 사회에 영웅이 많지 않은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경쟁하는 입장이 되거나 또는 제거해야 할 표적이 되면, 본업과 관계 없는 개인적인 비리를 캐고 비도덕적인 면을 부각시켜 그 사람을 아예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현상을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최근에 보도되고 있는 어느 대학교 총장의 경우에도, 이 총장의 일부 개혁조치에 불만을 가진 교수들이 소위 개인의 약점에 대해 폭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이런 식으로 지도자를 매도한다면 과연 누가 나서서 필요한 개혁 조치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일부 언론에서도 개인의 사적 영역에 속하는 문제를 크게 보도해 곤궁에 빠뜨리고 그 결과 멀쩡한 사람이 용도 폐기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접하게 된다.

사람 하나를 제대로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데, 이런 식으로 사람을 버리니까 건국 50년이 넘는 나라에서 존경 받는 지도자가 많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지도자를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는 사회다. 그러나 유능한 지도자가 없는 조직은 지리멸렬하게 되고 결국은 쇠퇴하게 된다. 따라서 제대로 된 지도자를 찾아내고, 키우고 또 관리하는 사회시스템이 요구된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전 회장 잭 웰치는 CEO의 기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후계자의 양성이라고 주장했다.

우선 지도자의 재목을 찾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업적주의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배경이나 연줄보다 실제 책임 있는 자리에서 얼마나 잘 성과를 이끌어 내고 조직을 이끌어 왔는가가 평가 기준이 돼야 한다. 20대에 본 시험 하나로 일생이 좌우되는 그런 제도는 없어져야 한다. 전문직의 자격시험도 시간이 지나면서 본인들이 자질 향상을 할 수 있도록 보완돼야 하고 업적평가제도도 더 강화해야 한다. 또한 정직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사회 전체의 평가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업적중심 평가 인재 육성

여기에는 공정한 법의 집행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법이 공정하지 못하면 사람들 간에 옥석이 구별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잘못 보이거나 재수 없으면 법에 걸린다고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비리나 부정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도 스스로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고 또한 다른 사람들도 판단을 제대로 못할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가치판단의 혼란 현상이 매우 심하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나에 대한 평가와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물론 공인이 되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보다 더 높은 도덕적인 기준이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식의 이중 잣대로, 그것도 사적인 영역을 너무 확대해 공인을 평가한다면 살아 남을 지도자가 많지 않을 것이다. 민주화가 더 진행될수록 제대로 된 지도자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것을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해야 사회의 파편화와 조직의 표류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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