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책의 날'선언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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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지난 23일 유네스코 제정 '세계 책의 날'과 관련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사무총장 김여수)와 시민단체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공동대표 도정일) 등이 참여한 세계 책의 날 한국 조직위원회가 선언문 '책 읽는 사회를 위하여'를 발표했다. '최선의 창조적 표현매체'인 책을 국민 모두가 향유할 수 있게 할 것을 명시한 선언문 전문을 함께 음미해본다.

<선언문 전문> 책은 인간의 기억이고 상상력이며 사유이고 표현입니다. 인류 문명의 가장 이른 아침이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문자와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5천년 전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점토판에 쐐기문자를 새겨넣어 기록문서를 만든 것이 책의 시초이며 그 점토판 책을 보관했던 서고가 도서관의 시초입니다.

그 점토판 책에 수록된 수메리아 신화의 한 대목에는 "하늘의 신이 땅 속으로 들어가 어둠의 신과 이레를 다투자 아무것도 없었던 황막한 땅 위로 푸른 나무 한 그루가 솟아올랐다"고 씌어 있습니다. 5천년 전의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후대로 전해지고 거기 담긴 사유와 상상력이 또 다른 사유와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었던 것은 책이라는 이름의 유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표현하는 존재가 아니라면 인간이 무엇일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이 존재의 핵심부에 책이 있습니다.

지금 이 갈등의 시대에는 세계의 서로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대화의 길을 트고 타자를 이해하며 문화적 차이들을 존중하는 관용의 정신을 갖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이 대화·이해·관용의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 정신을 온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확산시키는 데는 책이 최선의 평화적 수단이자 자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총과 폭탄을 통해서가 아니라 책이 열어주는 이해와 관용의 창구를 통해서만 인류는 공존의 정의가 살아 있는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 사회는 책이 최선의 지식을 실어 나르고 최선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최선의 창조적 표현매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매체는 국민 모두가 향유할 수 있어야 하며 국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학교 도서관을 살리고 공공도서관을 확충하자고 말하는 것은 국민 모두에게 지식과 정보와 표현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여 책 읽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제대로 된 사회, 창조적 사회, 기본이 선 사회를 실현하는 기초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제7회 '세계 책의 날'이 우리의 이 긴절한 사회적 요청과 과제를 다시 한번 일깨우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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