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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추락의 진짜 이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일본 경제의 미스터리는 최고·최신의 경제학 기법을 총동원해 치료해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왜 그럴까? 추락의 근본원인이 더 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의 근본문제는 사회의 에너지를 창출하는 원천, 즉 사회적 역동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배타적이고 챙기기 급급

첫째, 일본은 배타적이었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를 불문하고 밖을 배타하면 정체한다. 청나라·조선·나치·독일 등 외국에 배타적인 나라는 모두 망했다. 로마제국·당나라·영국·미국 등 세계사에 큰 족적을 남긴 나라는 모두 개방하고 포용하는 나라들이었다. 일본은 특별히 외국 사람·외국 제품·외국 문화·외국 학문 등 모든 외국적인 것에 대해 배타적인 나라였다. 우리 재일 동포에 대한 일본의 처우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외국인에게 인색했다. 일본은 1989년 세계 최선진국이면서도 미국으로부터 슈퍼 301조 대상국으로 지정을 받는 치욕을 겪었다. 한마디로 세계에서 외국 제품에 대해 가장 배타적인 나라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다. 일본 명문 대학은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아예 교수로 채용조차 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공부를 해야 알아주었다. 그 결과 일본 교수들 중 파생상품 등 소위 서양에서 발전된 현대적 재무학의 이론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놀랄 지경이라 한다.

둘째로 일본은 인색했다.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되고 나서도 어떻게 된 셈인지 일본은 여전히 '베푸는' 존재로 보다는 '받아 챙기는' 존재로 더 각인돼 있다. 아시아 경제의 맏형으로서 일본 기업이 진출한 그 어느 나라로부터도 일본이 감사와 칭송을 듣는 일은 별로 없었다. 대외 원조 면에서도 한번도 세계에 감동을 주었다는 기억이 없다. 무엇보다 아시아의 맏형이라 할 수 있는 나라가 월남의 '보트 피플'을 한 사람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부자이면서도 실리에 철저하고 절대 손해 안보는 깍쟁이 이미지 외엔 별 다른 이미지를 세계에 별로 주지 못했다. 베풀지 못하는 사람, 베풀지 못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자기의 틀 속에 갇혀 버린다.

셋째, 일본은 미래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과거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같은 패전국이면서도 독일은 자신의 철저한 반성을 통해 과거를 정리했고 그랬기 때문에 편안히 미래를 바라볼 수 있었고, 주변국과도 화평할 수 있었다. 역사교과서 파문에서 보듯 일본은 아직도 하나의 나라로서 자신의 과거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시선은 미래와 과거로 나눠져 있고 그래서 미래를 향해 일로 전진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이 세계화라는 이 지구사적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징후로 볼 때 한국은 지금 분명히 비상하고 있다. 정치·경제·문화가 다 급속히 나아지고 있다. 한국은 앞으로 10년 이내에 분명히 80년대 일본의 모습에 근접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일본의 영화는 불과 10년밖에 가지 못했다. 지금 한국의 모습을 보면 한국도 비슷한 운명이 될 소지가 다분히 있음을 느낀다.

과거 못떨쳐 미래도 못봐

우리는 배타적이다. 세계에서 중국 사람이 발을 붙이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우리 한국이다. 이중국적 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외국의 학교,외국의 병원, 외국의 변호사들은 발도 못붙이게 하고 있다.

우리는 또 인색하다. 다른 나라는 차치하고 한 핏줄인 북한에 좀 나눠주는 것 갖고도 그렇게 야단법석이니 앞으로 우리가 '주는 나라', 넉넉한 이미지의 나라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과거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역사의 정체성에 대한 왜곡과 혼돈은 계속되고 있다. 무엇이 과연 우리의 진정한 역사인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못하고 있다.

졸부가 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쉽다. 그러나 부호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일본을 모방해 졸부가 된 우리, 그 추락까지 닮을까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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