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들리는 鏡峰 큰스님의 禪問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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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밤늦게 도착하여 원주실에 바로 들러 하룻밤 머물 방 배정을 받는다. 신도 서너명과 스님 한 분이 들어와 차를 마시고 있다. 잠깐 쉬는 방선(放禪) 시간은 누구라도 즐겁다. 한 수행자는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볼 것 없이 뻐꾸기가 울어줘 방선 시간을 알았단다. 암자 주위 숲에 사는 뻐꾸기는 그런 식으로 수행자들에게 은혜를 갚고 있나 보다.

현재 경남 양산 극락암 호국선원에서 정진 중인 수행자는 15명 안팎이고, 안거 기간에는 30여명이 정진한다고 한다. 호국선원의 역사는 경봉(鏡峰)스님에 의해 비롯된다. 경봉스님이 1928년에 선원을 개설하고 1982년 열반에 들 때까지 조실로 계셨으니 그럴 만도 하다.

경봉 스님 하면 먼저 기억나는 것은 임종 무렵에 남긴 법문이다. 91세의 스님은 당신의 입적을 알리려고 문도들을 모이게 했다. 그때 시자 명정(明正)스님이 물었다.

"스님, 가시고 나도 스님을 뵙고 싶습니다. 스님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그러자 경봉 스님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야반 삼경(夜半三更)에 대문 문빗장을 만져보거라."

나그네는 이곳을 다섯 번이나 왔다. 이제는 눈을 감고도 환히 그릴 수 있다. 영축산 상봉의 그림자가 어리는 극락영지(極樂影池)를 지나면 영월루(暎月樓)가 있고, 그 옆으로 세워진 진여문(眞如門)을 들어서면 바로 선원이다. 예전에는 선방으로 정수보각(正受寶閣)이 쓰였으나 지금은 조사당(祖師堂)을 이용하고 있다. 시문에 능한 스님의 면모를 느끼게 하는 이름이 극락영지다. 우리말로 풀자면 '극락의 그림자 못' 정도이다. 극락을 보여줄 수는 없으나 그림자쯤은 어리게 하는 못이라는 뜻이다.

방에 들어 허리를 눕히는데 누군가가 나그네의 방문을 두드린다. 귀를 기울여보니 수조(水槽)에 떨어지는 물소리다. 잠을 청하지만 엎치락뒤치락. 마침내 물소리에 일어나 전등불을 켠다. 경봉 스님이 말씀한 그대로 야반 삼경이다.

벽에는 스님의 '물'에 대한 말씀이 종이에 인쇄되어 붙어 있다.

'사람과 만물을 살려주는 것은 물이다./ 갈 길을 찾아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은 물이다./ 어려운 굽이를 만날수록 더욱 힘을 내는 것은 물이다./ 맑고 깨끗하며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주는 물이다./ 넓고 깊은 바다를 이루어 많은 고기와 식물을 살리고 되돌아가는 이슬비/ 사람도 이 물과 같이 우주 만물에 이익을 주어야 한다.'

수조에 떨어지는 물을 가지고 이처럼 깊이 명상하는 스님의 사유에 나그네는 탄복한다. 방문을 열고 스님이 생전에 계셨던 삼소굴 앞마당으로 나아가 합장한다. 문득 지난해의 일이 떠올라 밤이슬에 젖듯 진저리를 친다. 오랫동안 스님의 법문을 들었던 한 할머니 신도에게서 들은 얘기가 생각난 것이다.

60년대 초만 해도 피를 토하는 떠돌이 폐병환자가 많았다. 그런 폐병환자 중 하나가 거지가 다 된 꼴로 극락암을 찾았다. 스님 혼자서 독경하고 있는데, 환자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물었다. "스님, 하룻밤 묵어갈 수 있습니까." 스님이 허락했다. 그런데 환자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스님의 얼굴과 가사에 피를 쏟아냈다. 그런 후 쓰러져버렸다. 이에 경봉 스님은 아무 말 없이 환자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고 자신의 가사를 꺼내 입혔다. 스님 자신도 얼굴에 묻은 피를 씻고 새 법복을 꺼냈다. 한 시간 후쯤 눈을 뜬 환자가 면목없어 하며 방을 나서려 했다. "스님께 피를 토했으니 죄송해서 나가야겠습니다." 스님이 말렸다. "밖이 추우니 나가면 죽습니다. 마침 위에 암자가 하나 비어 있으니 머무르시오." 이불을 줘서 보내고 난 다음날부터 스님은 환자를 정성껏 돌보아 병을 낫게 하고 제자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고통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자비란 말이 있다. 그런데 스님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이의 피를 닦아주고 그를 제자로 만들었다. 나그네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선사가 이 땅에 몇이나 되겠느냐고. 호국선원은 스님의 자비가 훈습된 곳이다.

어느새 새벽이다. 도량석에 소종 소리가 울리고 난 후, 스님들이 빗자루를 들고 선방 앞마당을 쓸고 있다. 마당에는 나뭇잎 하나 없지만 그래도 수행자들은 빗자루 질을 하고 있다. 밤새 쏟아져 내린 달빛과 별빛을 쓸어모아 마음에 담고들 있는 느낌이다.

아침 일찍 차를 마셔보기도 처음이다. 바위처럼 듬직한 선원장 명정 스님이 우려낸 차다. 스님의 일화도 많다. 그 중의 하나. 세간에 걸레스님으로 잘 알려진 중광과의 숨겨진 이야기다. 중광이 풋중일 때는 세속의 습을 버리지 못하고 곧잘 완력을 썼다고 한다. 어느 절 공양주 행자 시절에는 수 틀리자 무쇠솥을 들어 원주스님에게 시위한 적도 있는데, 극락암에 와서도 거칠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대들보를 혼자 어깨에 멜 만큼 힘이 장사였던 명정스님이 암자 뒤로 그를 불렀는데, 꼬리를 내린 중광이 머뭇거리다 나오길래 욕만 실컷 해주었다는 것이다.

선방으로 이용하는 조사당에는 조사 33분이 모셔져 있다. 그런데 효봉스님이 찾아와서 경봉 스님에게 내 바랑에는 34개의 방망이가 있다고 하자, 경봉 스님이 그 의미를 알았다는 신호로 효봉 스님의 팔목을 꾹 눌렀다고 한다. 33개는 33조사에게 줄 방망이일 터이고, 나머지 한 개는 누구의 것인지 궁금하다.

호국선원을 거쳐간 수행자로는 혜월(慧月), 경봉, 고암(古庵), 혜암(慧菴) 등이 있다. 오늘은 이 수수께끼를 던지며 글을 접는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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