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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제품 무한 변신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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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첨단 디지털 시장의 풍향이 미묘하다. 때때로 복고풍 바람이 부는가 하면, 겉모습만 봐서는 어떤 가전 제품인지 언뜻 구분하기 힘든 하이브리드(혼혈) 제품도 쏟아지고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융합)가 진행되면서 제품군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경쟁상품의 디자인을 과감히 베끼기도 한다. 집안 구석에 처박혀 있을 법한 한물 간 가전제품도 화려하게 부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치열한 경쟁이 가전제품의 무한 변신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 '문자'되는 집전화

◆복고풍 가전제품=휴대전화에 밀려 맥을 못 추던 유선 전화기가 재기 조짐을 보이고 있다.

KT가 선보인 가정용 유선 전화기 '안'은 휴대전화 기능을 담았다. 문자 메시지를 전송하고 발신자 번호를 표시하거나 통화 연결음까지 들려준다.

또 전화번호 200개를 저장하고 24화음 벨소리를 낸다. 내장된 버튼을 이용해 뉴스.지역정보.엔터테인먼트 등의 다양한 콘텐트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보이스 포탈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지난달 출시된 이 전화기는 일주일 만에 올 한 해 판매 목표분인 2만여대가 팔려나갔다.

디지털 카메라의 열풍에 가려진 폴라로이드(즉석 카메라)도 다시 사랑을 받고 있다. 후지의 즉석 카메라 'Instax 미니' 시리즈는 4만~12만원대의 다양한 제품이 나왔다. 디지털 카메라에 비해 초소형.초경량이라 휴대가 간편한 데다 즉석에서 사진을 바로 뽑을 수 있어 최근 판매량이 부쩍 늘었다.

어머니들이 사용하던 미싱도 부활했다. 요즘 손으로 직접 만드는 핸드 메이드가 인기를 끌면서 전자동화한 소형 미싱이 들어설 자리가 생긴 것이다. 특히 '하이드림 미니미싱기'(d&shop.2만9800원)는 싼값에 부피가 적은 데다 쉽게 사용할 수 있어 많이 팔리고 있다.

MP3 플레이어에 눌린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는 '어학용 기기'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인 인터파크 측은 "상당수 어학교재들이 아직까진 카세트 테이프로 나왔기 때문에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에 대한 수요가 줄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파나소닉의 'RQ-CW05'(2만2500원)는 기능이 단순하고 값도 싸다.

이 플레이어는 라디오 기능조차 내장돼 있지 않고 카세트 테이프만 재생한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고가의 MP3플레이어에 부담을 느끼는 고객들이 꾸준히 구입하고 있다"면서 "음향기기 분야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휴대전화에 밀려난 무전기도 시계형 무전기로 변신했다. '멀티콤 스포츠'는 예전 무전기와 달리 간편하게 휴대하고 분실하지 않도록 손목에 차거나 목에 걸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 PC인지… DVD인지…

▶ DVD 같은 거실형 엔터테인먼트 PC.

◆변신은 무죄= 경쟁 제품의 기능을 본뜨는 것은 이미 옛날 이야기다. 지금은 모양까지 베끼는 가전제품도 등장했다.소비자에게 경쟁 제품군의 장점까지 아우르는 이미지를 줘 디지털 융합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소니코리아의 ‘DSC-M1’은 겉보기엔 휴대전화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알고 보면 510만 화소의 디지털 카메라다. 본체 반쪽을 뚝 잘라 양쪽으로 날개를 펼치듯 회전되며 LCD 창이 위·아래로 돌아간다. 본체 안에는 휴대전화 번호판처럼 갖가지 작동버튼이 오밀조밀 모여있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거실형 엔터테인먼트 컴퓨터 ‘매직스테이션 MT40’의 DVD 플레이어와 닮은 모습이다. 인텔 펜티엄4칩과 512MB 메모리 등 컴퓨터 사양을 고루 갖춘 제품이다. 여기에 일반 DVD 플레이어에서 사용되는 컴포넌트 단자가 달려 있고 7.1채널의 고음질 오디오를 지원한다. 외양은 물론 성능까지 PC인지 DVD 플레이어인지 구분이 안가는 셈이다.

산요가 내놓은 디지털 카메라 ‘작티 C1’의 생김새는 캠코더 같다. 캠코더처럼 한 손으로 잡고 촬영을 하게끔 디자인을 본떴기 때문이다. 디지털 카메라이지만 정지 화상은 물론 초당 30프레임의 고화질 동영상을 30분간 촬영할 수 있다. 변신은 무죄라지만 작티 C1은 이 때문에 뜻밖의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관세청이 캠코더와 비슷한 성능과 모양 때문에 캠코더에 적용하는 8%의 관세를 매겼다. 관세청 측은 “디지털 카메라는 원래 무관세 품목이지만 작티 C1은 구분이 애매해 캠코더로 분류했다”고 설명했다.

홍주연.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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