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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바로잡습니다] 1.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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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특종과 오보는 종이 한 장의 차이입니다. 정파와 정치인들의 이해가 부딪치고 여론에 영향을 받는 정치기사는 더욱 그렇습니다. 실제로 특종이 기사화하는 순간 오보가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반대로 당장 오보로 판명난 기사가 시간이 지나면 특종이 되기도 합니다. 올해 중앙일보는 신문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사실(fact) 보도와 분석 보도를 엄격히 분리했습니다. 그러나 매일매일 '취재한 사실'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올해 '오보의 추억'을 더듬어 봅니다.

◆ 문건과 한건주의=올해 연초부터 정국은 심상치 않았습니다. 총선이 있는 해였기 때문입니다. 여야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마침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3월 9일 국회에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했습니다. 사흘 뒤엔 탄핵안을 통과시킵니다. 그러나 탄핵은 역풍을 불렀고, 열린우리당이 단숨에 과반의석을 차지하는 여소야대 상황을 불렀습니다.

이에 앞서 중앙일보는 2월 27일자에 '열린우리당 총선전략 문건'을 보도했습니다. "(총선에 대비한) 당.정.청 합동지휘부 필요"라는 제목으로 열린우리당 내부 문건을 단독보도한 것입니다. 이 보도는 당시 한나라당 등에 의해 훗날 대통령 탄핵의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됩니다. 이때 열린우리당은 해당 보도를'오보'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문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의 공식 의견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을 해왔습니다. 실무자의 개인 의견을 여권 전체 의견인 것처럼 '오버'(과장)했다는 것이 열린우리당 입장이었습니다. 당시 중앙일보는 기사 본문에 문건이 어느 정도의 신빙성이 있고, 얼마나 비중이 있는 것인지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부터 문건이 열린우리당의 최종 결정을 담은 것이냐는 문제는 제대로 챙겨보지 않았습니다. 접근이 어려운 전략문건의 희소성에만 집착했을 뿐입니다. 결국 기사의 파장에 비해 기사작성 과정이 선정적이고, 무책임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 핵심 측근의 말을 과신=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이틀 뒤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중앙일보는 그날(3월 11일자 1면) 아침,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을 취재해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이 할 말을 예상해 보도했습니다. 노 대통령이 ▶총선 후에도 대선자금 수사를 계속하고▶대선 때 받은 불법자금의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 이상이 나오면 대통령직을 걸겠다는 이른바 '10분의 1 발언'에 대한 후속 조치는 수사가 종결된 뒤 취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회견에서 대선자금 수사를 계속하겠다는 언급은 없었습니다. 또 '10분의 1 발언'에 대해서도 "수사결과가 (1/10 발언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으니 무승부로 하자"고 했습니다. 답변을 유보하지 않고, 상황을 매듭지어 버린 것이죠. 결국 이 대목은 오보가 됐습니다.

당시 보도 내용 가운데는 노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의 선거개입 발언 등을 인용하며, 관권선거 시비에 대한 사과 요구를 거부할 것이란 기사가 있습니다. 이는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앞의 오보가 희석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핵심 측근의 얘기를 듣고 썼다 해도 하루 뒤 노 대통령이 할 말을 미리 쓰는 것은 위험했습니다. 측근의 말이 얼마나 정확한지도 노 대통령이 직접 확인해주지 않는 한 검증이 안 되는데 무리를 한 것입니다.

설령 그 하루 전에는 100% 틀림없었어도 하루 뒤엔 생각이 바뀔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더구나 대통령직은 숱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여러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해서 기자회견 직전에도 얼마든지 발표 내용을 바꿀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을 가진 자리입니다. 이를 간과한 것입니다.

◆ 인사 오보=탄핵정국 및 총선은 여권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여권의 체제개편이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관심은 국무총리가 누구냐였습니다. 중앙일보는 총리 지명일인 6월 8일자 2면에 "문희상 차기총리 급부상"이란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이해찬 총리였습니다.

당시 정치부 기자들은 심야까지 발품을 팔았습니다. 그 와중에 여당 내부에서 문희상 총리설이 거론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취재했습니다. 문희상 의원 자신은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열린우리당에서 그런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중앙일보는 성급한 판단을 했습니다. 문 의원의 말을 확대.과잉 해석하는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앞으로 인사기사의 경우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을 다짐합니다.

◆ 시간에 따라 바뀌는 기류=중앙일보는 3월 25일자 1면에 "열린우리당이 민노당 권영길 대표가 출마하는 경남 창원을 지역엔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으며, 이는 민노당과의 총선 후 정책공조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중앙일보는 아직도 보도 시점에서 그 기사는 정확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사를 통해 내용이 공개되면서 기류가 바뀌었습니다. 보도 후 열린우리당 내 여론이 진보정당과의 공조가 선거에 유리하지 않다는 쪽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오보가 됐습니다.

'김정일 답방 추진 여당이 나선다'(7월 6일자), '국가보안법 개폐 작업에 착수한 열린우리당의 무게 중심은 개정 쪽'(7월 15일자 4면)이란 기사도 마찬가집니다. 나름대로 정확한 보도라고 쓴 기사들입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의 최종 당론(12월 19일 현재 기준입니다)은 '보안법 폐지 및 형법 보완'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은 아직도 오리무중입니다. 책임 있는 인사의 발언을 인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화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신중히 판단했어야 했다고 자성합니다.

◆ 공개된 자료의 함정=17대 국회에선 보도자료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각종 질의도 무성했습니다. 9월 18일자 1면의 "북한이 우리나라 화학업체로부터 살상용 화학무기인'사린가스'의 주원료로 쓰이는'시안화나트륨' 142.4t을 구입하려다 미국 정보기관의 개입으로 무산됐다"는 보도도 이를 옮긴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시안화나트륨은 사린가스가 아니라 '타분가스'라는 화학무기의 원료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의원이 질의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 기사화하다 보니 생긴 착오였습니다.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관련 부서 또는 외부 전문가 등의 도움을 받아 내용을 검증하는 작업을 반드시 거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정치부

*** 김교준 정치부장 "무리한 기사 욕심이 오보 불러"

2004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한 해였습니다. 대통령 탄핵안의 국회 통과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등 사상 초유의 일들이 많았습니다. 정치부 기자들은 숨가쁘게 움직이고 숱한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오보의 함정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미흡한 취재와 성급한 판단, 지나친 확신 또는 무리한 기사 욕심 등이 오보의 원인이었습니다.

많은 정치 기사를 출고해 신문에 게재하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을 정확성에 두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신문에게 독자의 신뢰보다 더한 영예는 없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특히 정치인의 '말'을 취재하는 정치부 기자는 그 말과 현실 사이에서 냉정한 균형감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속고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이 깊이와 다양성이고 이 같은 노력이 차곡차곡 쌓이면 특종은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봅니다. 그래서 특종을 열 번 하는 것보다 오보 하나를 막는 게 더 중요하다는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올해 저희들의 오보나 과장, 잘못된 기사로 피해를 보신 분들과 실망하신 분들, 그리고 독자들께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

*** 직제 바뀐 줄 모르고 장관급을 차관급 분류

의원들의 개인 의견을 마치 당론이 정해진 것처럼 판단하거나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해 보도한 일도 있습니다. 1면 머리기사로 보도된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의 '사형폐지법안'(7월 16일자),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의'남북교류협력법안' 보도(11월 3일자) 등이 그런 경우입니다. 두 법안은 모두 국회에 제출만 됐을 뿐 아직 심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당론으로 채택된 것도 아닙니다. 이런 보도는 종종 되풀이됐습니다. 물론 "오보는 아니다"고 강변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마치 법안이 곧 처리될 것처럼 오해하게 할 수 있는 보도였습니다.

변명이 필요없는, 부주의에 의한 엉뚱한 실수도 적잖았습니다. 본지는 인사에서 지역편중이 있는가를 점검해 보기 위해 7월 30일자 4면에 장.차관급 고위공직자의 출신비율을 조사해 게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장관급인 법제처장.국가보훈처장을 차관급으로 분류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16대 마지막인 3월 국회에서 이 두 자리를 장관급으로 격상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을 까맣게 몰랐던 것입니다. 5월 6일자 3면 '청와대 부산 盧측근 5인에 러브콜'기사는 내용도 적중하지 못했고, 여기에 더해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장상훈씨의 사진 대신 동명이인인 장상훈 충남 천안시의회 의장의 사진이 실린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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