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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뻗치는 끼 주체 못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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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특유의 순발력을 인정받아 오락 프로 PD들이 '섭외 0순위'로 꼽는다는 연예인 하리수(27), 그리고 다음달 서울 코엑스몰에 1천2백평 규모로 20대 젊은이들을 겨냥한 복합문화공간 '밀레 공화국'을 개장하는 문화벤처 밀레21의 대표이사 유밀레(23)가 만났다.

그런데 회사 대표라고 보기엔 이 아가씨, 어딘지 수상하다. 어깨를 훤히 드러낸 탱크톱에 반짝이 구슬이 촘촘히 박힌 꼭 끼는 바지 차림. 시원한 용모가 패션 모델이라고 해도 손색 없을 정도다.

알고 보니 사업뿐 아니라 연기와 노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야심이 대단한 '예비 엔터테이너'다. 다음달 연극배우 박정자가 출연하는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 '대머리 여가수'로 무대에 데뷔하며 올 여름 출시를 목표로 음반도 녹음 중이라고 한다. 그녀가 "친한 언니를 만난 것 같다"며 미소 띤 악수를 건네자 하리수의 표정이 밝아진다.

초여름 같은 후텁지근한 날씨에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아 다소 짜증스럽던 분위기도 돌변한다. 유밀레가 갑자기 일본어로 말하기 시작하자 일본에서 4년간 살았던 하리수는 "오랜만에 일본어로 얘기하니 정말 재미있다"며 능숙하게 받아넘긴다. 금새 공통점을 찾아낸 두 사람, 크림 소스가 든 파스타를 제일 좋아한다며 깔깔댄다.

유밀레는 트랜스젠더로 화제를 뿌렸던 하리수만큼이나 별난 이력의 소유자다.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 인문학부에 입학했다가 한 학기도 안돼 자퇴하고 가수가 되겠다고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긴 서울대 캠퍼스를 배꼽티에 너덜거리는 청바지 차림으로 누볐으니 "오죽하면 별명이 사이코"였을 만도 하다.

꿈은 이루지 못하고 대신 네바다 주립대에서 호텔 경영을 공부하고 귀국한 뒤 지인들끼리 의기투합해 밀레21을 차렸다. 의·식·주에 관련된 각종 매장과 연기·노래 등을 지도하는 문화센터, 그리고 연극·콘서트가 마련된 공연장 등으로 이뤄진 '밀레 공화국'은 "나처럼 튀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숨통을 틔워주고 싶어"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무역회사에 다녔던 어머니와 노래·영화·TV 드라마 등을 통해 익힌 영어·일본어·중국어·프랑스어가 사업에 큰 힘이 됐다. 한 예로 미국의 나스닥 상장 기업인 의류 브랜드 램페이지는 그녀가 e-메일을 통해 접근해 회장과 면담한 뒤 아시아 독점 수입권을 따내기도 했다.

유=하리수씨와는 구면인데, 기억하시나요. 저희 매장에 하리수씨가 옷을 사러 온 적이 있었어요. 하리수씨를 보면 정말 문자 그대로 '연예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모델이면 모델…. 다음 달에는 첫 콘서트를 한다면서요.

하=자정부터 두시간 동안 진행되는 심야 콘서트예요. 80% 이상이 라이브로 진행돼요. 그래서 요즘 러닝머신을 타면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어요. 콘서트는 그 사람의 '최고'와 '최선'을 보여주는 무대니까 대충 준비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춤 추는 건 제가 워낙 좋아하는 데다 '타고 났다'는 칭찬을 들을 정도니 다행이지요.

유=와, 저랑 똑같으시군요. 저는 사업차 해외 출장을 자주 가는데, 아무리 쓰러질 정도로 피곤해도 밤에는 꼭 클럽에 가서 춤을 춰요. 밤새워 여덟 시간을 춤만 춘 적도 있는 걸요. 미친 듯이 열중하고 젊음을 발산하는 클럽 문화가 좋아서지요.

하=가수로 데뷔한다고 들었는데, 노래가 어떤 풍인가요.

유='동양의 엔야'라고 할까, 뉴에이지 계열의 신비로운 음악이에요. 사실 음반 준비만 5년째에요. 표현하고 싶은 건 많은데 제 감정을 음악 속에 정확히 담아줄 작곡가를 못 만나니 자꾸 미뤄지네요.

하=하하, 그게 팔방미인의 운명이랍니다. 전 작곡 공부할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이번 콘서트도 제가 보여주고 싶은 것과 예산 사이에서 고충이 많았어요.

유=남을 즐겁게 한다(entertain)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회사 일이 끝나면 오후 10시가 넘는데도 어김없이 녹음실로 가야 하거든요.

하=전 새벽에 들어가서 화장도 못 지우고 옷만 갈아입고 다시 나가는 적이 많아요. 연예인들이 흔히 돈을 쉽게 번다고들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피곤하다고 잠시 소홀히 하면 다시는 불러주지 않는 게 연예계의 냉정한 생리죠. 저보고 연기나 노래, 토크 등 다방면에 능하다고 하는데, 제가 재능이 많아서라기보다 뭐든지 만능이 되지 않으면 이 세계에서 버틸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맞아요. 이제는 '멀티 유스(multi-use)'의 시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그만큼 젊은 세대들의 관심이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를 만큼 다양하기도 하고요. '밀레 공화국'은 그런 n세대들이 문화를 즐기고 소비하는 곳이에요. 하리수씨의 이름을 딴 패션 코너가 마련된다면 인기 만점일텐데, 어떠세요?(함께 웃음)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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