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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우리 아이들 이 지경 되도록 어른들은 뭘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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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올 칸 영화제 수상작인 이창동 감독의 ‘시(詩)’는 시신(屍身) 한 구가 강물에 떠내려 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남자 중학생 6명에게 집단 성폭행 당한 뒤 투신자살한 여학생이다. 그러나 가해 학생들은 전혀 반성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청소년 범죄의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갈수록 낮은 연령층에서 집단으로 강간·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추세가 뚜렷하다. 범죄를 놀이처럼 여겨 잘못을 저지르고도 잘못인 줄 모르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최근 남녀 청소년들이 여자 친구 한 명을 폭행·살해하고 시체까지 잔인하게 유기한 사건이 꼭 그렇다. 중학생 또래 아이들이 분위기에 휩쓸려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고도 시신에 노잣돈을 넣어주질 않나, 범행 후 태연하게 잠을 자질 않나 그저 장난 정도로 여기는 모습이 기막힐 따름이다. 얼마 전 군산에서 가출 중학생들이 소녀 가장을 상습 성폭행한 것이나, 울산 초등학생들의 동급생 성추행 사건도 충격적이다.

어쩌다 우리 아이들이 이 지경이 돼 버렸을까. 바른 길로 이끌지 못하고 방치한 어른들 책임이 크다. 가해 청소년들은 대부분 저소득층 결손 가정에서 자랐고 툭하면 가출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학교도 그만둔 상태였다. 이처럼 가정과 학교가 돌봄을 포기한 아이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뻔하다. 인터넷 중독에 빠지고 끼리끼리 어울리며 비행을 저지르기 십상이다. 제대로 된 가치관이 형성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유해(有害) 매체를 무제한 접하다 보니 죄를 짓고도 죄책감조차 안 드는 거다.

일부의 문제라고 손 놓고 있어선 안 된다. ‘학교 밖 청소년’이 7만여 명, 가정과 학교생활에서 문제를 안고 있는 이른바 ‘위기 청소년’은 30만 명 이상이란 추산이다. 이미 학교를 벗어난 아이들은 보호시설과 대안학교를 늘려 사회 적응을 도와야 한다. 각종 위기에 처한 아이들은 상담과 멘토링 등을 통해 가정·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게 보살펴야 한다. 이 같은 돌봄의 안전망이 갖춰지지 않고선 증가일로인 청소년 범죄를 막을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