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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는 것이 바로 명상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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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문숙씨는 “모든 것은 그저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할 뿐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그 변화하는 우주의 심리에 자신을 맡기는 일이다. 그 흐름과 변화를 침묵 안에서 지켜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황석영 원작의 영화 ‘삼포 가는 길(1975년 작)’의 여주인공. 그가 바로 문숙(56)씨다. 스무 살 나이에 데뷔, 백상예술상(74년)과 대종상 신인상(75년)을 받았다. 그는 영화를 찍으며 스물세 살 연상의 이만희 감독과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이 감독은 1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떴다. 젊은 문숙은 슬픔에 허덕이며 미국으로 떠났다. 2007년 자신의 사랑과 아픔을 기록한 『마지막 한해』(창비·백낙청 감수)를 내기도 했다. 그때 인터뷰에서 문숙씨는 말했다. “다음 책에선 제가 상처를 치유한 이야기, 요가와 명상 이야기를 담고 싶다.”

문씨가 그 약속을 지켰다. 『문숙의 자연치유』(이미지박스)란 책을 썼다. 삶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미국에서 요가와 명상을 배운 그는 이제 지도자급이다. 대학에서 건강식과 요리사 과정도 전공했다. ‘건강식과 명상’에 대한 세계적 트렌드도 꿰고 있었다. 그는 “음식을 먹는 것도 하나의 명상”이라고 말했다. 2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3년 만에 그를 만났다.

-왜 음식을 먹는 것이 명상인가.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며 자신을 채우려 한다. 그런데 현대인은 아무리 음식을 먹어도 계속 허기를 느낀다. 그게 아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자신을 비우는 거다. 그럴 때 음식도 명상이 된다.”

-이해가 안 된다. 음식을 먹으면서 어떻게 자신을 비우나.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에 따라 내 안이 채워질 수도 있고, 내 안이 비워질 수도 있다. 어떤 음식들은 우리 몸 안에 ‘빈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렇게 생겨난 빈 공간을 통해 치유의 에너지가 작동하는 거다. 그런 음식이 바로 건강식이고, 치유식이다.”

-건강식과 치유식, 예를 들어 달라.

“첫째는 전통적인(Traditional) 음식이다. 요즘 우리는 새로운 음식을 많이 먹는다. 그러나 20년 뒤에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음식은 얼마나 될까. 전통적인 음식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에센스(핵심)만 남은 음식이다. 둘째는 가공처리가 되지 않은 통식품(Wholefood)이어야 한다. 그래야 에너지가 살아있다.”

-에너지가 살아 있는 음식이라면.

“가령 심으면 바로 싹이 날 수 있는 씨앗이다. 통곡물과 신선한 채소, 현미도 이에 해당된다. 그게 바로 기(氣)가 살아있는 음식이다. 밭에서 상추를 따면 그 순간부터 기가 내려가기 시작한다. 냉장고에 오래 보관할수록 기가 더 내려간다. 현대인들이 많이 먹는 가공식품 등은 기가 아주 낮은 음식이다.”

-기(氣)가 높은 음식을 먹으면 무엇이 달라지나.

1970년대 중반 드라마·영화 등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문숙. [중앙포토]

“에너지가 살아있는 음식을 먹다 보면 알게 된다. 우리 몸은 그리 많은 양의 음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신토불이(身土不二)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다. 그 지역에서 자라는 한 그루 나무다. 자신이 사는 지역의 음식을 먹는 건 면역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연은 아주 정교하게 디자인돼 있다. 문제는 늘 사람이 자연에서 멀어질 때 발생한다. 그런데 현대인은 과일과 채소가 언제 나오는지도 모르고 먹는다. 먹는 음식만 봐도 그 사람을 대충 알 수 있다.”

이 말끝에 문숙 씨는 장바구니 얘기를 꺼냈다. “미국의 마트에서 장을 볼 때 가끔 다른 사람의 장바구니를 본다. 그럼 그 사람이 보인다. 가령 열이 많고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이 있다. 그럼 장바구니에 육류 등 바비큐 거리가 잔뜩 있다. 또 장이 약해 보이는 사람의 장바구니를 보면 가공식품이 많다. 채소를 많이 산 사람은 인상부터 푸릇푸릇한 느낌을 준다.”

-왜 자연치유를 말하나.

“나무를 보라. 가지가 하나 뚝 부러져도 자연적으로 치유하는 힘이 있다. 사람도 나무처럼 자연의 일부다. 자연의 치유력이 작용하도록 우리는 비워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 동물들도 아플 때 굶으며 속부터 비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울 때 그 밑바닥에서 새싹이 솟아나온다.”

-건강식이 수행이나 명상에도 도움이 되나.

“고대 인도의 건강관리 체계인 아유르베다(인도의 『동의보감』에 해당)에선 자연을 세 가지 성질로 구분했다. 순수하고 맑은 마음을 도모하는 사트바(Sattva), 정열과 율동과 폭력 등을 대표하는 라자스(Rajas), 그리고 게으름과 어리석음을 상징하는 타마스(Taxmas)다. 음식도 마음을 안정시키고 건강을 지켜주는 사트빅(Sattvic) 음식, 자극성이 강한 라자식(Rajasic) 음식, 가공식품 등 죽은 음식을 대표하는 타마식(Tamasic) 음식으로 나뉜다. 2500년 전 고타마 붓다도 이 식이요법을 따르며 수행했다. 지금도 많은 요기(요가 수행자)들이 이걸 따른다.”

- 사람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그걸 바꾸기가 쉽지 않다.

“그게 ‘스스로 아프고자 하는 의지(ill will)’다. 인간에겐 습성이 있다. 그 습성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 우리는 몸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먹는다. 그리고 고통을 겪는다. 그러다 자신의 몸에 선물을 하듯 값나가는 음식이나 보약으로 미안한 마음을 메우려 한다. 때려서 피멍을 들게 하고는 비싼 연고를 사서 발라주는 격이다. 그리고 그걸 치유라고 믿는다.”

-간추리면 어떤 식사가 자연식, 건강식인가.

“ 어린 시절 우리가 먹던 촌스런 음식이 바로 세계적 트렌드의 건강식이더라. 게다가 옛날에는 냉장고가 없었으니 모두 제철음식이었다.”

-결국 사람과 자연이 둘이 아닌 건가.

“건강식을 시도하며 생활을 바꾸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긴다. 자연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자연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어리석음 속에서 살다가 생긴 병 때문에 영혼을 찾기도 한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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