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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的 분위기 "탈출" 배우 감 우 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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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이미지에 묻히거나 갇혀 산다는 건 지겹고 숨막히는 일이다. 매번 자신을 버려야 하는 배우에게 '부드러운 남자''지적인 남자'는 더구나 편안한 '이미지의 의상'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 감우성에게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일종의 '독립만세' 같은 작품이다.

스튜디오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 이름에서 '감수성'을 자연스레 떠올렸던 기억이 난다. 타인을 보는 시선이 대체로 직각에서 15도 정도 아래였는데 십년이 지난 지금도 자아와 세상 사이의 각도는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감우성은 감수성이다.

"지나치게 예민하기 때문에 싫은 사람 앞에서 절대로 표정을 숨길 수 없어요." 배우로서 하기 힘든 고백이면서도 한편으로 세월의 먼지가 쌓이지 않았음을 증언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 세 살 위의 형과 누가 마징가 제트를 더 비슷하게 그리느냐로 시합한 뒤 부모님께 심사를 부탁하면 으레 칭찬은 감우성의 몫이었다. 누가 장난감을 소유하느냐로 다툰 게 아니라 누가 그걸 더 잘 그리느냐로 승부를 겨뤘다니 그 집안의 풍속이 예사롭지 않다. 미술대회에 나가면 상을 놓친 적이 없었고 자연스레 예고(선화예고)를 거쳐 미대(서울대 동양화과 89학번)에 입학했다('그림 읽어주는 여자' 한젬마와는 7년 간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 사이다).

소년 감우성을 사로잡은 건 크게 두 가지, 그림과 영화였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 수시로 집 부근 극장에 출입했다. '무릎과 무릎 사이''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등 문제작들을 보면서 어느 새 화면에 자신을 풍덩 빠뜨리고 싶었다. 사춘기 때는 영화 '디어 헌터'의 러시안 룰렛 장면에 스스로를 대입시켜 보며 '놀았다'.

대화 도중 딱 한번 휴대전화가 울렸다. 상대는 끓는 물에 약간 화상을 입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걱정하는 말투로 보아 친형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배우 한석규였다. 둘은 1991년 문화방송 탤런트 입사 동기(20기)다. 여섯 살 차이인데 아껴주기로는 친형제 이상이다. 감우성이 손가락을 다쳤을 때 한석규가 머리까지 감겨주었다니 그 우정이 짐작이 간다.

데뷔로는 동기지만 한 사람은 배우로서 이미 저만치 가 있다. 초조할 수도 있겠는데 그는 차분히 웃는다. "쉽게 거저 먹을 생각은 없습니다." 스스로 밝히는 자신의 한계는 이른바 안고수비(眼高手卑). 안목대로 몸이 움직여 주지 않음을 알면서 계속 버틴 것은 '언젠가 잘하게 될 거야'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그의 말로 "데뷔하기에 적절한 작품"이었다. 상대역 엄정화와는 93년 MBC 베스트 극장서 처음 만난 인연이 있다. 그들은 촬영 내내 서로를 엄탱, 감탱이라 부르며 친하게 지냈다. 뒤에 붙은 '탱'은 엉덩이가 '탱탱하다'는 뜻이란다.

그의 꿈은 수년 내 서울 근교에 아담한 집과 그 집보다 조금 큰 화실 하나를 짓는 일이다.

그의 그림 속에 묻어 나올 세월의 흔적은 상처일까, 아니면 훈장일까. "내 인생의 관심사는 어제도 오늘도 '주제 파악'입니다." 소재를 파악했으니 주제 파악도 결국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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