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장미의 전쟁 막 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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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맞은편 나뭇가지 위에 올라서 있던 사내가 복두를 풀어 얼굴을 가렸다. 수레행렬이 숲 속으로 들어오자 사내가 품 속에서 표창 하나를 빼어들었다. 쇠로 만든 창 끝의 한가운데가 호로모양으로 잘록하여 던져 맞추기에 편한, 앞이 무거운 무기였는데 사내는 특히 표창의 달인이었다.

사내는 앞서 오는 수레를 끄는 말의 옆구리를 향해 표창을 내어 던졌다. 휘릭~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표창이 말의 옆구리에 내리 박히자 순간 놀란 말이 소스라치면서 튀어 올랐다.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입에는 겸마라는 나무조각을 물리고 있어 비명을 지르지는 못하였으나 말 한마리가 놀라 뛰어오르자 다른 말도 함께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사복들이 있는 힘을 다해 말고삐를 잡아 말을 진정시키려 하였지만 불가하였다.

그때였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행렬 앞으로 검은 옷을 입은 사내 둘이 날개가 달린 날짐승처럼 내려 앉았다. 앞장서서 권마성을 빼어 부르는 하인의 가슴에 방상시의 탈을 쓴 검은 사내가 비수를 내리꽂았다.

옆구리에 표창이 꽂혀 미쳐 날뛰는 말과 이를 진정시키려는 사복들이 뒤엉킨 데다, 말안장의 양편에 채의 끝을 걸어 멍에한 수레였으므로 수레마저 뒤집힐 정도로 흔들리고 있어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르는 대혼잡이 한순간에 일어난 것이었다. 이 틈을 노려 탈을 쓴 사내가 수레 안으로 숨어들었다.

수레의 휘장은 짙은 청색과 보랏빛의 빛깔로 되어 있었으므로 김양이 지시하였던 대로 진골인 김명이 타고 다니는 수레임이 분명하였던 것이다.

수레 안 안교(鞍橋)에는 사람 하나가 앉아 있었다.

"누구냐."

놀라 소리 지르는 사람의 목을 향해 탈을 쓴 사람의 비수가 날아들었다. 순간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사내는 죽어가는 사람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명줄이 끊길 때까지 계속 입을 틀어막고 있었는데, 그사이 그는 뜨거운 핏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윽고 완전히 숨이 끊긴 것을 확인한 사내는 수레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러자 망을 보고있던 사내 역시 동시에 앞뒤로 나뉘어 사라져버렸다. 실로 눈깜짝할 겨를도 없는 순식간의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찰나적인 한순간. 그것도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은 황혼녘에 왕도 경주에서 시중 김명이 타고 있는 수레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객들로부터 급습을 당한 것이었다.

이로써 김명이 암살을 당했다는 소문이 왕도에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또한 며칠 뒤 김명의 시신이 인용사에서 화장되어 사리함에 넣어져 안치되었다는 소문도 계속 들려왔다.

그러나 또한 다른 소문도 흉흉하게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수레 속에 앉아있던 사람은 실은 인용사의 왕사 두광스님으로 두광은 마침 일이 있어 천도제에 참석하지 못한 김명 대신 수레를 타고 오다가 변을 당했다는 소문도 떠돌고 있었다. 따라서 인용사에서 화장된 시신의 주인공은 김명이 아니라 사실은 왕사 두광의 법신이라는 소문도 떠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흉흉한 소문들은 곧 사라지게 되었다. 때마침 흥덕대왕이 오랜 중병 끝에 숨을 거두어 붕어하게 된 것이었다.

이때의 기록이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이 나오고 있다.

"12월. 왕이 돌아가니 시(諡)를 흥덕이라 하고, 조정이 유언에 의하여 장화(章和)왕비의 능에 합장하였다."

『삼국사기』의 왕력표(王曆表)에도 '흥덕대왕이 왕비의 무덤에 합장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지금 월성군 안강읍 육통리에 있는 흥덕왕릉이 바로 그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이 왕릉은 특히 신라의 왕릉 중 가장 완성된 형식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으며, 어쨌든 흥덕대왕의 죽음으로 신라의 조정에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피의 전쟁, 즉 장미의 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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