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안녕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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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주 많은 사람들이 내색은 않았을지언정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민감한 사람들은 속으로 아찔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9일 밤 입원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건강을 회복하고 일요일 퇴원한 것은 정말 다행이다.

권력과 결정권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느냐 여부는 국가적인 중대한 문제다. 그런 대통령이 밤중에 돌연 입원을 하는가 하면 그의 세 아들이 줄줄이 비리 관련 의혹을 받고 있으니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제대로 업무수행을 할 수 있을지 국민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이 업무수행을 제대로 못하면 정부가 제대로 국정운영을 할 수 없게 되고 국가 전체가 그 영향을 받게 된다.

지난주 입원 소식에 아마 주한외교가나 정보관계자들은 물론 재계나 각계 요인(要人)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한때 바쁘게 움직였을 것이다.

전례없는 대통령의 입원

더구나 그때 마침 국무총리는 해외출장 중이었고 그 다음 서열인 경제부총리는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서기 위해 사표를 내기 직전이었다. 정부의 중심을 잡고 국정을 책임있게 처리할 구심점이 한때나마 흔들리는, 또는 희미한 상태가 됐다면 지나칠까. 발표에 따르면 그 기간에 별 중요한 일이 없었다니 다행이지만 그런 때에 무슨 큰 일이라도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기에 따라 등이 서늘해질 일이다.

이런 민감한 일이 터지면 사람들은 의심이 많아지게 된다. 고위층이 입원하면 증세를 축소 발표하는 것이 동서고금의 흔한 일이기에 '과로'와 '위장장애로 인한 영양섭취 부족'이라는 공식 발표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많았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영양결핍이라니…"하는 말이 나오고 입원 전 3, 4일간 식사를 못했다는 설명에 대해서도 "보통사람도 하루만 못먹으면 병원에 갈텐데 대통령이 왜…"하는 의문이 일었다. 이런 의심들이 자칫 유언비어로 번지기 쉬운 것은 물론이다.

이런저런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현직 대통령의 입원이라는 전례없는 경험을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될 것이다. 우선 이런 경우 국정의 공백이나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 국정운영의 시스템화(化)를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막중한 국가운영이 누구의 한때 입원이나 출장으로 흔들리거나 지장을 받아서는 안된다. 항상 법령과 제도, 각급 공직자의 공인(公人)의식에 따라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치(人治)니 제왕적 대통령이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풍토에서는 법령과 제도가 아니라 눈치와 보신(保身)으로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시스템이 작동할 리 없다. 눈치를 볼 대상이 없거나 지시를 못받게 되면 당장 국정 혼선·혼란이 오기 쉽다.

그리고 이번과 같은 특별한 경우에 대한 '발표기술'도 좀 더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발표해야 국민이 안도하고 믿게 될까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이번처럼 '영양결핍'이란 발표는 사실이 그렇더라도 설명 부족의 느낌이 있다. 더구나 대통령의 업무과중을 설명하면서 "대외과시용 또는 불요불급한 일정을 과감히 줄이겠다"고 했는데, 세상에 우리 대통령이 '대외과시용'업무나 '불요불급'한 업무 때문에 건강까지 해쳤다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닌가.

아들 문제 빨리 결단해야

지금 우리나라에는 크고 중요한 일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월드컵은 코앞으로 다가오고 대선과 지방선거를 둘러싼 분열과 반목의 골은 깊어만 가고 있다. 회복기 경제정책도 중요하고, 권력 주변의 부패 근절도 급한 일이다.

어느 때보다 나라의 중심을 잡는 대통령의 리더십과 과감한 결단, 정력적인 업무추진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쇠약해진 노()대통령이 아들 문제까지 겹친 터에 그런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당장 아들 문제가 저렇듯 시끄러우니 누구를 꾸중하기도 어렵고 부패근절·기강확립을 말하기도 어렵다. 이렇듯 대통령이 안녕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정운영이 제대로 되고 나라가 안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대통령의 '안녕회복'이 시급하다. 우선 건강회복이 가장 중요한 만큼 업무의 과감한 위임 등으로 부담을 덜고, 이 기회에 국정운영의 시스템화, 인치 아닌 제도치(制度治) 확립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들 문제의 결단도 급하다. 아들 문제로 청와대가 협박당했다는 말이 나오는 상태에서 대통령이 어떻게 안녕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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