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실 인사 이래도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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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 대통령 세 아들의 비리 의혹에 여론의 분노가 급격히 달아오르는 데 비해 청와대에는 승진과 발탁, 자리 만들어주기의 환호성이 터지고 있다. 전임 진념 경제부총리가 경기도지사 선거의 민주당 후보용으로 차출될 때부터 국민은 정치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경제만 전념한다는 金대통령의 거듭된 다짐이 공염불로 드러났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그만큼 이번 인사 과정을 둘러싼 권력 심장부와 밑바닥 민심 분위기는 극히 대조적이다.

'3홍(弘) 비리 의혹'은 헌정사상 전례 없는 대통령 아들들의 집단적 권력 탈선 스캔들이다. 외국 같으면 대통령의 하야까지 거론해야 할 문제라는 여론의 지적이 실감난다. 이같은 치명적 상황까지 온 데는 청와대 비서실의 대통령 친인척 관리·보좌 기능의 결함이 꼽히고 있다. 그렇다면 청와대 참모들은 뼈아픈 자성과 문책의 한복판에 있어야 하는데 연쇄적인 인사 특혜를 받고 있으니 다수 국민은 어처구니 없어 한다.

'박지원 비서실장'은 예견된 타이틀이기도 하다. DJ 심기를 잘 읽는 것으로 알려진 朴실장의 기용은 의도했든 안했든 이번 인사의 정치적 배경을 의심케 할 것이다. 여러 의혹과 구설에 올랐던 사람을 더 큰 자리에 중용했다는 것은 청와대의 대선전략 구도와 무관치 않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따라서 朴실장은 이런 오해와 의심을 살 만한 일을 결코 해서는 안된다. 본인이 강조해 왔듯 '정치적 식물인간''정치 뚝'이라는 평소 소신을 확인시켜야 할 것이다. 특보라는 2선의 역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서실장 자리는 막중하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번 대선에서 확실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일과 문제의 '3홍 의혹'을 한점 의혹없이 반듯하게 정리하지 않고서는 평탄한 임기 말을 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위인설관(爲人設官)식 이기호 특보 임명도 이해할 수 없는 인사다. 청와대 경제수석 시절 그는 대통령 처조카인 이형택씨의 보물 발굴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아 그만뒀다. 법적 하자가 드러나지 않았다지만 경질 두달 반 만에 장관급 특보로 재기용한 것은 '믿는 사람만 자리바꿔 중용한다'는 논란 많은 DJ식 인사의 면모를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다. DJ가 내세워온 '작은 정부' 원칙에도 맞지 않는 옥상옥(屋上屋)인사의 중첩이다.

'박지원 비서실장'체제 등장은 전임 전윤철 실장과 어정쩡하게 나눠가졌던 비서실의 역할 분담 시스템이 정상화했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잘 나가는 소통령'으로서 朴실장의 영향력은 더욱 커져버렸고 대신 국정보좌 책임과 위험 부담도 증대했다. 당장 '세 아들의 비리 의혹과 건강 관리'라는 새로운 상황이 DJ의 임기 말을 압박하고 있다. 그런 국정 환경에서 청와대는 정치와 검찰 쪽을 멀리하고 임기의 안정된 마무리를 위한 보좌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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