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제2부 薔薇戰爭 제3장 虎相搏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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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김양이 말하였던 함께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는 원수를 '불구대천지수(俱戴天之讐)'라고 부른다. 이 말은 '아버지의 원수'를 뜻하는 말로, 『예기(記)』에 나오는 말이다.

"아버지의 원수와는 같은 하늘아래 살 수 없고(父子讐弗俱共戴天)

형제의 원수를 보고 무기를 가지러 가는 것이 아니며(兄弟之讐弗反兵)

친구의 원수는 나라를 같이 하는 것이 아니다(交遊之讐弗同國)"

이 말의 뜻은 다음과 같다.

「아버지의 원수와는 함께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으니 반드시 죽여야하고, 형제의 원수를 만나면 집으로 무기를 가지러 갔다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항상 무기를 가지고 다니다가 원수를 보게되면 그 즉시 그 자리에서 죽여야한다. 친구의 원수와는 한나라에서 같이 사는 것이 아니다. 그를 나라밖으로 쫓아내던가 아니면 역시 죽여야한다.」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철천지 원수가 하나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김양이 묻자 염장이 대답하였다.

"반드시 죽여야하나이다."

염장은 김양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염장은 김양이 자신을 자객으로 고용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렵 신라의 진골들은 자신만의 수레를 사용하고 있었다. 2년 전인 834년. 흥덕대왕은 모든 관등에 따른 복색 거기(騎), 기용들의 규칙을 발표하여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사람은 상하가 있고, 지위는 존비가 있고, 명칭과 법식이 같지 않고 의복 또한 다르다. 그런데 풍속이 점점 각박하여지고, 백성들이 앞을 다투어 사치호화를 일삼고, 다만 외래품의 진귀한 것만을 숭상하고, 도리어 국산품의 야비한 것을 싫어하니 예절이 참람하려는데 빠지고 풍속이 파괴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에 옛법에 따라 엄명을 베푸는 것이니 그래도 만일 일부러 범하는 자가 있으면 국법에 따라 다스릴 것이다."

그리고 흥덕대왕은 "진골이 사용하는 수레는 재목으로 자단(紫檀)과 침향(沈香)을 쓰지 말고, 대모(玳瑁)를 붙이지도 못하고, 또 감히 금은과 옥으로 장식하지 못한다"고 금하고 있었는데,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 장보고 선단이 자바와 수마트라에서 산출되는 향기나는 재목인 자단과 역시 동남아에서 생산되는 향목인 침향까지 수입했을 것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흥덕대왕은 진골의 전용수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전후의 휘장은 작은 무늬의 비단과 견직, 명주 이하를 쓰고 빛깔은 짙은 청색과 보랏빛으로 하라."

그러므로 김양이 탄 수레는 분명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짙은 청색과 보랏빛의 휘장을 두른 수레를 노리면 그 안에 김명이 타고 있음이 분명해지는 것이었다. 더구나 진골이하의 6두품부터는 '진골이상의 귀인을 따라갈 때에는 휘장을 치지 않고 혼자서 갈 때라도 대로 만든 발이나 왕골을 사용하라'고 명기되어 있었으므로 굳이 휘장의 빛깔을 구분하지 않더라도 휘장을 두른 수레만 노려 급습할 수만 있다면 김명을 단칼에 척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에 하나."

김양은 염장과 이소정에게 단검을 내려주면서 물어 말하였다.

"일을 그르쳐 산채로 잡히게 되면 그때는 어찌하겠느냐."

그러자 염장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나으리께오서는 심려치 마오소서. 만약에 일을 그르쳐 산 채로 잡히게 된다하더라도 칼을 들어 낯가죽을 벗겨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하여 정체를 드러내지 아니할 것이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 비밀을 지킬 것이나이다."

그날 밤.

김양은 한숨도 잠들지 못하였다.

이제 날이 밝으면 최후의 결전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만약 염장과 이소정이 급습하여 김명을 척살할 수만 있다면 천하의 대세는 상대등 김균정에게 기울게 될것이다. 그러나 일을 그르쳐 두 사람의 자객이 사로잡히고 그 자객의 배후에 자신이 있음이 밝혀지게 된다면 온 천하는 피바다로 변하게될 것이다. '혈류표저(血流漂杵)', 피가 흘러 절굿공이를 띄운다는 뜻으로 온 조정에서는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를 이루어 시산혈해(屍山血海)의 끔찍한 참극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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