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최남단 개최지 오이타 : 온천관광 特需에 축제熱 고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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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오 이타 공항에 내렸다. 훈풍이 귓가를 간질이며 남국(南國)임을 일러주었다. 고속도로변에 도열한 벚나무들은 꽃잎을 흩날리며 외지인을 환영했다.

오이타(大分)현은 일본의 월드컵 개최지 중 가장 남쪽에 있다. 온천 지역인 벳푸(別府)를 앞세운 관광 명소다. 한국에서도 연 9만여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규슈지역 최대 도시인 후쿠오카(福岡)를 누르고 월드컵을 유치한 오이타는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 발돋움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치밀한 준비의 결정체가 바로 월드컵 경기장인 '빅 아이(big eye)'다. 일본 10개 구장 중 유일하게 개폐식 지붕이 설치된 경기장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지붕을 열고 닫는 모습이 마치 큰 눈을 깜빡이는 것 같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오이타 시내에서 버스로 20분 가량 떨어진 야산, 오이타 스포츠 공원 안에 있다. 한국의 서귀포처럼 강한 바람을 피하기 위해 지하 20m에 필드를 조성했다.

천장에 설치된 '스카이 카메라'는 오이타 경기장만의 자랑이다. 지상 66m 높이에서 2백m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공중촬영, 스탠드 오른쪽의 대형 스크린(10×18m)에 비춰준다. 9천석의 이동 좌석이 30분 만에 안으로 접혀들어가면 '빅 아이'는 육상 경기장으로 탈바꿈한다. 첨단 음향시설은 대형 콘서트를 열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됐다. 개장 이후 축구 경기는 물론 각종 운동회와 심지어 벼룩시장까지 열릴 정도로 이곳은 1백22만 오이타 현민의 구심점으로 자리잡았다.

오이타현의 살아 있는 상징은 무려 24년째 재직 중인 히라마쓰 모리히코(平松守彦·76)지사다. 축구광인 그는 '1촌1품(一村一品)운동'을 성공적으로 보급한 인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촌1품 운동이란 한 지역에서 특산물 한 가지씩을 집중 개발해 상품화하자는 것. 한국의 새마을운동과도 비슷한 점이 많다. 그래서인지 그는 한국에 지인도 많다. 월드컵이 한·일 공동개최로 결정됐을 당시, 대부분의 유치 희망도시에서는 '김이 빠졌다'며 축하 행사를 취소했지만 오이타만큼은 성대한 축하 이벤트를 열었다.

오이타현이 손님맞이에 쏟는 정성은 남다르다. 우선 현을 6개 지역으로 나눠 참가 팀을 응원하기로 했다. 간단한 회화를 적은 책 10만권도 이미 배포했다. 참가국의 언어와 요리 등을 배우는 강좌도 성황이다. 오이타 역에서 경기장까지 셔틀버스 2백60대를 무료로 운행하기로 했고, 싼 값에 숙박시설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일본식 전통여관은 1인당 1박 요금을 2천엔 선으로 낮추기로 했다. 당초 1천6백명을 모집하기로 했던 자원봉사자는 희망자가 넘쳐 2천3백명으로 늘어났다. 이 중 6백여명이 외국어가 가능하다.

오이타현 소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카메룬의 트레이닝 캠프로 결정된 나카쓰에무라(中津江村)다. 인구 1천3백70명으로 일본의 80개 트레이닝 캠프 유치 희망지 중 가장 작은 자치구다. 그럼에도 이들은 깨끗하고 조용한 환경을 강조하여 진심 어린 설득을 해 '아프리카 챔피언'을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특별한 볼거리도 없지만 4면의 천연 잔디구장과 깔끔한 숙소를 갖춰 훈련지로는 최상이다. 매년 2만명 이상이 연수나 합숙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해마다 전국 소녀축구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궁벽한 산골 마을이 '축구'로 자립에 성공한 것이다.

오이타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스페인전에서 장쾌한 중거리 슈팅을 성공시켰던 '캐넌 슈터' 황보관(37)씨. 그는 이곳 프로축구팀(J2) '오이타 트리니타'의 유·청소년팀 전담 코치로 일하고 있다. 이 팀에는 '왕년의 명 해설가' 박경호씨가 고문을 맡고 있고, 94월드컵 멤버였던 이영진·최문식 선수가 거쳐갔다.

황보관씨는 "오이타는 관광지라서 그런지 손님맞이에 대한 노하우와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이타=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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