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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동탑은 최악의 복원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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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륵사지 동탑이야말로 20세기 한국 문화재 복원 최악의 사례로 기록될 겁니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버리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요."

16일 전북 익산 미륵사지석탑(서탑) 해체 조사보고회에 참석한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1993년 현재의 석탑 동쪽에 복원 완료된 동탑(사진)에 대해 이같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유 청장은 "당시 모든 전문가가 복원에 반대했음에도 무리하게 최고 권력자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졸속으로 복원돼 버렸다"면서 "이 같은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 청장은 13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문제의 동탑에 대한 복원이 결정된 것은 91년, 노태우 정권에 의해서였다. 미륵사지에는 창건 당시에는 모두 3개의 탑이 있었는데(목탑을 가운데 두고 그 동.서 양쪽에 석탑 1기씩), 동탑은 74년 발굴조사 과정에서 그 기단부가 드러남으로써 존재가 밝혀졌다.

노 정권이 복원을 결정하자 당시 거의 모든 문화재위원이 '고증 불가'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했고, 일부에선 '호남을 위한 선심성 행정'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하지만 복원 결정은 그대로 밀어붙여졌고 마침내 91년 공사가 시작돼 93년에 마무리됐다.

복원된 탑은 한 변 각 12.5m인 정사각형 하층 지반 위에 2중 기단을 설치한 다음 9층으로 쌓아올린 형태다. 지면에서 상륜부까지 높이는 27.8m고, 1층 탑신에는 十자형 통로를 개설해 놓았다.

옥개석과 상륜부에는 풍탁도 달아 놓았다. 이곳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금동동탁이 나와 이를 복제했다는 것이다. 현장 안내판에는 동탑은 이번에 복원하기 위해 해체 중인 서탑의 구조와 80년 이후 동탑지 주변에 대한 발굴조사 등을 토대로 고증, 복원한 것으로 돼 있다.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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