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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금리인하 제대로 약발 받게 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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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9일 콜금리를 묶어두기로 결정한 데 대해 재정경제부 측이 서운함을 표시하면서 현재 경제상황에서 금리 인하의 필요성과 효과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는 금리 인하가 "소비.투자에 약발이 없고 물가 등 부작용만 키울 것"이라는 '무용론'과 "경기를 살릴 불쏘시개로 동원돼야 한다"는 '불가피론'이 엇갈리고 있다. 이처럼 금리 인하를 놓고 찬반 의견이 맞서는 가운데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4일 연방기금 금리를 5개월 연속 올려 내년 1월 콜금리 결정을 할 한은 금통위의 입지를 더 좁혀 놓았다.

◆금리 내려도 늘지 않는 내수=금통위는 지난해 5월과 7월, 올 들어 8월과 11월 콜금리를 0.25%포인트씩 내렸다. 개인과 기업이 돈을 빌리는 데 대한 이자 부담을 줄여 소비.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돈을 풀어도 설비.건설투자는 증가 폭이 점점 줄어들고, 민간 소비는 올 들어 내내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 특히 11월의 소비 심리(통계청, 소비자 기대지수)는 외환위기 직후보다 더 오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꽁꽁 얼어붙은 경기를 살리는 데 과연 콜금리 인하가 효과가 있는지가 도마에 올라 있다.

일각에서는 금리 인하가 소비를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소비 자체를 더 줄인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금융자산의 규모(1065조1150억원)가 금융 부채(542조8470억원)보다 커 금리를 내리면 이자소득이 금리 부담보다 더 줄어든다는 것이다. 특히 이자소득의 감소가 고령화에 따른 노후대책, 직장에서의 조기 퇴직, 결혼한 가구의 첫 주택 마련 기간의 장기화 등과 맞물려 지갑을 닫게 만든다는 것이다. 대출금리가 떨어져도 서민층은 이자가 줄어든 만큼의 돈을 소비하는 데 쓰지 않고 주로 빚을 갚는 데로 돌려 금리 인하가 소비를 줄인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많은 경제학자는 이에 대해 "일부 금융 소득자들은 소비를 줄이겠지만, 전체적으로는 금리 인하가 투자를 이끌어 소득이 늘고, 결국 소비도 늘어난다"는 의견이다. 이들은 현재 상황에서 금리 인하가 크게 소비와 투자를 키우지는 못할 것으로 보지만, 경기를 살릴 정책 수단으로서 재정을 동원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연세대 경제학과 이제민 교수는" 경기 부양에 크게 효과는 없지만, 재정을 동원하기 쉽지 않은 만큼 금리 인하 카드라도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조동철 연구위원은 "금리를 내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되고 있어 금리를 인하할 여지가 크지 않다"고 금리 인하 정책의 폭이 좁다고 진단했다.

금융연구원의 서근우 연구조정실장은 "대기업들은 금리 부담을 덜 느끼는 상황이므로, 금리를 평균적이고 전체적으로 내리기보다는 금융비용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 사업자에게 차별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영세 사업자의 구조조정이나 사업 전환, 전직 지원 자금 등을 저금리로 빌려주거나 신용 보증을 해 주는 게 금리인하의 효과를 높이는 길이라고 서 실장은 덧붙였다.

금리를 인하하면 최악의 경우 일본의 경우처럼 제로금리까지 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홍익대 경영학부 박원암 교수와 연세대 이제민 교수는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 제로금리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배상근 연구위원은 "미국이 경기 회복을 위해 연방기금 금리를 1% 수준으로 낮췄던 점에 비춰 보면 이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밝혔다.

◆내수 부양은 통화정책의 울타리 밖=금리 정책의 약발이 먹히지 않는 것은 금리 인하와 내수를 연결하는 통로가 제대로 뚫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조동철 연구위원은 "투자 위축에 의한 시장금리의 하락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게 우리 경제의 문제이나, 이는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박원암 교수는 "금리가 떨어지면 먼저 건설투자가 늘고 이어서 설비투자가 증가하고 소비도 늘어나는 게 일반적이지만, 원체 건설 경기가 죽어 있어 금리를 내려도 건설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리인하가 효과를 보려면, 건설 경기를 살리고 위축된 투자.소비 심리를 풀어주도록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없애주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배상근 위원은 금리 인하가 먹히지 않는 것은 한국은행의 '널뛰기식' 통화정책에서 비롯된 측면도 크기 때문에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성 회복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배 위원은 "한은이 콜 금리 결정과 관련해 '깜짝쇼'를 하는 등 통화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면 시장에 혼선을 줘 투자나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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