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속도 어떻게 조절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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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최근 거시경제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기로 한 것은 적어도 시기면에서 적절한 조치라고 본다. 성장률로는 지난해 3분기에 경기가 이미 저점을 통과한 것으로 보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각종 지표의 회복 속도가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는 여전히 강세이며 그동안 감소해 왔던 수출도 4월에는 증가세로 반전할 기세다. 하반기에는 성장률이 두자리 숫자까지 간다고 보는 전문가도 나오고 있다.

반면에 물가 오름세가 빨라지고 있어 이 추세대로 간다면 인플레율이 6%를 넘어설 위험이 있다. 저금리정책과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경쟁을 통해 과다하게 공급된 유동성은 주식과 부동산 가격의 급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런 지표들의 움직임을 감안할 때 지금은 성장보다 안정 쪽으로 정책의 우선순위가 옮겨가야 할 시점으로 판단된다. 물론 그동안에도 정부가 부동산 투기에 대한 세무조사, 기준시가 상향조정, 가계대출 억제 등 미시적인 대책을 강구해 왔고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큰 흐름에 대응하려면 역시 거시정책의 기조를 바꾸어 재정지출이나 금리를 조정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다만 우리 경제의 취약점과 불안요인들을 감안한다면 충격적이거나 과격한 대책보다 정책수단들의 미조정을 통해 경기의 속도를 조절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업의 설비투자는 아직 침체해 있으며 올해엔 양대선거, 미국 경제의 침체 가능성, 일본 경제의 위기적 상황, 원유가격의 급등 등 엄청난 불확실성이 도사리고 있어 우리 경제의 앞날을 낙관만 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과거의 경험으로 본다면 정부의 경기대책은 적기에 실시되지 못하거나 나중에 과잉대응이 반복됨으로써 경제의 급격한 부침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건강하지 못한 경제가 온탕·냉탕을 되풀이하다 보면 속으로 곪아갈 수밖에 없다. 이번 만큼은 그런 실수가 재발하지 않도록 정부가 대응책의 강도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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