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처럼 드러나는 슬픔 갤러리 상 '심재영 초대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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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서울 인사동 갤러리 상에서 10~19일 열리는 심재영(추계예대 교수·65)초대전은 추상성이 짙은 동양화를 보여준다. 낙서풍의 벽화를 보는 듯한 작품들은 닥종이 위에 먹과 호분, 치자로 만든 물감으로 제작됐다. 길이 6m가 넘는 대작을 포함해 모두 30여점을 내놓은 대규모 전시회다.

서양의 표현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자유분방한 호소력이 동양화의 관조적 자세와 혼합된 '순례자' 연작을 출품했다.

작가는 "흘러가는 시간 속을 순례하는 인간과 만물의 무상함을 생각하고 그속에서 유희하는 심정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품 속에는 한국전쟁의 와중에 친지가 학살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작가의 슬픔과 한, 이를 극복하려는 휴머니즘적 정서가 함께 들어 있다.

사람의 두상 같은 형상들이 부둥켜안거나 싸우면서 어딘가로 휩쓸려 가는 듯한 장면들이 이를 연상케 한다. 고난의 현대사를 살아온 보통사람들의 삶이 그을리고 지워진 고대의 벽화처럼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02-730-0030.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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