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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김수환 추기경 회고록서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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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수환(82) 추기경이 최근 구술(口述) 회고록'추기경 김수환 이야기'(평화방송.평화신문)를 펴냈다. 김 추기경은 회고록에서 어린 시절과 가톨릭 사제 생활,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등을 되돌아보고 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한 뒤의 일상도 소개했다. 그의 인생 얘기가 부분적으로 나온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다뤄진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회고록에는 '사랑을 늘 입에 달고 사는 사제'로서 그 사랑을 올바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고백이 곳곳에 등장한다.

추기경은 메리놀외방전교회 기후고 신부의 구멍 숭숭 뚫린 속옷 바지를 보면서 "나는 물론이고 한국의 어느 신부가 그런 속옷을 입어봤겠는가"라고 부끄러워했다. 또, 정일우 신부와 고 제정구 의원이 경기도 시흥에 철거민 이주촌을 건설하고 자신의 거처를 마련해 줬는데 공동화장실 사용 등이 너무 불편해 한번도 자고 오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내 신앙과 생활이 과연 복음적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곤 했다. 대답은 '아니다'에 가까웠다"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싶은 꿈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이유는 직책 때문이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였다"라고 술회했다.

민주화운동 당시의 얘기도 솔직하게 토로했다. 추기경은 "나는 본의 아니게 민주화운동의 한가운데 있었다"며 "젊은 신부들이 자꾸 시국기도회를 여는 것을 말리는 편이었다.당시 내가 정의구현사제단의 대부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누가 나에게 '그때 최선을 다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럼 아무것도 안 했느냐'고 되물으면 '아니다. 나름대로 사태를 막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추기경은 80년 정월 초하루, 새해인사차 방문한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에게 "서부 활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서부영화를 보면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잖아요"라고 쓴 소리를 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유신헌법 제정 직전까지만 해도 그를 인간적으로 이해했으나 그 뒤로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국화빵 구워 파셨던 어머니'에 대한 회고도 눈길을 끈다. 회고록에 따르면 추기경의 집안은 순교자(할아버지 김보현) 집안이다. 때문에 아버지(김영석)는 유복자로 태어났고 박해를 피해 옹기장수로 전전했다. 아버지는 대구 처녀인 어머니(서중하)를 만나 대구에 정착했다. 추기경은 6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추기경은 장사 일을 배워 25살에 장가 들겠다는, 그야말로 소박한 꿈을 갖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신부가 되어라"고 강권해 일본.독일 등지로 유학을 갔다. 일본 유학 중 '평생의 영적 스승'인 독일인 게페르트 신부를 만나며 사제 생활을 시작(51년)했으나 그에 앞서 한 처녀에게서 청혼을 받았던 적이 있다. 부산 출신인 그 처녀는 "나를 받아줄 수 있겠어요?"하고 당당하게 프러포즈를 했다. 김 추기경은 "그때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옛날 소 신학교(중등과정) 교장 선생님이 '여자는 아예 쳐다보지도 말라'고 신신당부 했었는데…"라고 털어놓았다.

추기경 임명 당시의 일화도 소개돼 있다. 추기경이 69년 2월 로마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한 뒤 일본에서 하룻밤 을 머물고 서울행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나가는데 게페르트 신부가 전화를 했다. 그가 "아, 김 대주교, 축하해요"라고 말해 의아해하자 그는 다시 "당신이 추기경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신문에 당신 이름이 났다"는 말까지 듣고 나자 입에서 "임파서블(불가능하다)"이라는 말부터 나오더라는 것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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