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DJ에 직격탄 "마이 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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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파국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갈수록 아슬아슬해 끝까지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내 분위기도 흉흉하다. 노무현(盧武鉉)·이인제(李仁濟)후보 간의 갈등이 위험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됐고, 盧후보의 언론 관련 발언 파문에 이어 李후보가 8일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친위조직인 연청(聯靑)이 경선에 개입했다"면서 청와대의 해명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金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민주당 총재직을 버렸지만 당원 대부분의 확고한 '정신적 지주'임에 틀림없다. 당연히 金대통령에 대한 정면 비판은 금기로 간주돼 왔다. 그런 마당에 李후보측이 청와대를 겨냥하고 나섰으니 당이 발칵 뒤집힐 수밖에 없다.

金대통령을 공개적으로 공격함으로써 李후보가 사실상 경선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유력하다. 李후보의 한 측근은 "충북·전남·부산·경기·서울 지역 경선이 남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는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李후보는 앞으로 선거인단을 상대로 한 선거운동을 거의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李후보는 이날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경선에 끝까지 참여하고 결과에 승복하겠지만 盧후보를 돕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盧후보는 급진좌파 노선이고 나는 중도개혁 노선"이라며 "盧후보가 당선 후 정계개편을 하면 나는 내 깃발을 들고 간다"는 논리를 폈다. 李후보의 측근은 "李후보는 멍에처럼 얹혀 있는 경선불복 시비를 벗어나야 한다"면서 "우리가 만든 당에서 왜 나가느냐"고 말했다.

李후보는 경선에서 패배하면 盧후보가 추진하는 정계개편 상황을 지켜보면서 운신의 방향을 정할 것 같다. 정계개편 과정에서 당내 노선투쟁을 통해 盧후보에게 반발하는 의원들을 규합할 가능성도 있다. 오는 6월 지방선거 직후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올 때를 기다리는 듯하다.

하지만 盧후보측은 李후보측의 계산대로 끌려가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盧후보의 핵심 측근은 "李후보와 함께 간다는 생각은 이미 접었다"고 했다. 그는 "李후보는 경선이 끝날 때까지 우리에게 상처만 입히려고 할 것"이라면서 "李후보가 당을 떠나도 큰 타격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분위기를 반영하듯 盧후보를 지지하는 김원기(金元基)고문과 임채정(林采正)국가전략연구소장은 이날 "경선에서의 후보간 비난 공세에 대해 당 선관위가 나서달라"고 공식 요구했다. 경우에 따라선 당 지도부가 李후보측을 제재하려고 들 수도 있다. 李후보로선 그것을 다시 반발의 명분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오는 28일 서울대회 때까지 경선이 지속된다 해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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