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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교과서 “미국이 북한 침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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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중국 정부가 발행한 역사교과서가 한국전쟁에 대해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조차 왜곡해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8학년(우리의 중학교 2학년에 해당)용 ‘중국역사’(사진) 하권은 북침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중국과 북한이 침략전쟁에 맞서 승리한 것으로 서술하는 등 작위적인 인식과 시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 책은 중국 교육부가 의무교육과정 표준교과서로 인가한 것이다. 인민교육출판사가 올 1월 인쇄했다.

◆“미국이 북한을 침략”=‘중국역사’ 하권은 제2과에서 한국전쟁을 5쪽에 걸쳐 비교적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교과서는 한국전쟁을 ‘미국에 맞서 조선(북한)을 지원했다’는 의미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표현하고 첫머리에는 ‘1950년 6월 조선내전이 발발했다’고 적고 있다.

특히 남침설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북침설을 노골적으로 부각했다. “미국이 제멋대로(悍然) 파병해 북한을 침략했다. 미군을 위주로 한 소위 연합군이 38선을 넘어 중국 변경에 있는 압록강변까지 공격했다”고 북침을 기정사실로 기록했다.

또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낳고 3년 만에 정전협정이 체결됐는데도 중국 교과서는 한국전쟁이 북한과 중국의 승리로 끝난 것처럼 사실을 왜곡했다.

◆“오류 바로 잡아야”=중국 정부가 발행한 역사교과서가 북침설을 기정사실로 가르치다 보니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일반 중국인들의 인식에도 문제점이 많이 발견됐다.

19일 중국인민혁명역사박물관에서 만난 대학생 류(柳·20)는 “미군이 북한을 침략하는 바람에 중국이 부득이하게 전쟁에 참전하게 됐다고 교과서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베이징(北京) 시내의 교과서 전문 서점에서 만난 고등학교 3학년생 덩(丁·18)은 “북한이 먼저 침략했다는 얘기는 아직 못 들었고 북한이 통일을 원한다는 얘기는 배웠다”며 “삼국지에 나오듯 오래 분열되면 통합되고 통합된 지 오래되면 분열되기 쉬운 것은 자연스러운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인 역사 전문가는 “옛 소련 외무부의 각종 문서들이 기밀 해제된 1990년대 이후 한국전쟁의 진실이 속속 드러났지만 중국의 역사 교과서는 기존 시각을 거의 대부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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