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헌법은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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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60년대의 미국은 지금의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흑인과 여자, 그리고 노인들은 사회로부터 노골적인 차별을 받고 있었고 이들이 받는 고통으로 인해 나라는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갈기갈기 찢어져 신음하고 있었다.

性 차별·언론규제 등 여전

이러한 어두운 때에 케네디라는 지도자가 나와 차별을 없애고 이 나라를 하나로 만들자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 작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약 4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흑인·여성·노인을 가장 차별하던 나라에서 가장 덜 차별하는 나라로 변모했다. 그것은 참으로 엄청난 혁명, 소리 없는 혁명이었다. 미국은 사람이 성별·인종·나이라는 주변적인 요소가 아니라 자질과 인성이라는 본질적인 요소에 의해서만 구별되고 대접받을 권리가 있음을 선언하고 이를 가장 잘 실천한 편이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이 소리 없는 혁명이 정치적 과정, 즉 케네디 같은 사람의 정치적 리더십에 의해 이뤄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케네디가 이 과정에 불을 댕기긴 했지만 사실 그것을 이룬 결정적인 힘은 정치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왔다. 그것은 사법이었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이 혁명은 정치적인 혁명인 동시에 사법적 혁명이었던 것이다. 사실 사람을 부당하게 차별하지 말라는 것은 이미 미국의 헌법에 명백히 적혀 있었다(수정헌법 제 14조).다만 그것이 지켜지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다. 혁명의 횃불이 지펴지자 미국 대법원은 용감하게 그리고 대담하게 나섰다. 여성과 흑인, 그리고 노인을 차별하는 미국의 모든 법과 관습에 철퇴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 엄청난 혁명을 앞장서 이끌어갔던 사람은 그 유명한 얼 워렌 대법원장이었다. 예를 들어보자. 버싱(Busing)이란 것이 있었다. 버스에 ing를 붙인 말이다. 흑인들만이 사는 빈민지역의 공립학교에는 흑인 학생들만이 있었고 백인들만이 사는 고급지역의 학교에는 백인 학생들만이 있었다. 미국의 대법원은 바로 이렇게 흑백 학생들이 분리되어 사는 것 자체가 바로 흑인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라고 판시하고 버스를 동원하여 매일 아침 흑인 동네에서 흑인학생들을 태워 백인 동네의 학교에 내려놓는 일을 하도록 하였다. 자기의 자식들이 짐승처럼 여겨지던 흑인 학생과 뒤섞이게 되는 것에 격분한 학부모들이 데모를 하고 소송을 홍수같이 제기하였지만 대법원은 요지부동으로 이를 밀고 나갔다. 이러한 예들은 수없이 많다.

미국의 대법원이 앞장서 밀고 나간 것은 비단 평등조항뿐이 아니었다.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을 수 있는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모든 법과 관습들에 철퇴를 내려 나갔다.

이러한 거대한 작업을 통해 미국은 변모되어 갔고 무엇보다 대법원은 미국의 헌법을 바로 국민의 생활 속에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어 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국민은 정치집단보다는 법원을 더 신뢰한다. 그래도 법원이 세상의 이해관계에 더 초연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 개혁은 정치권보다 법원이 나설 때 훨씬 더 쉽게 이뤄지는 것이다.

법으로 사회 개혁 이뤄야

우리의 현실을 한번 보자. 그동안 여성·노인·출신지역 등 사람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히 이뤄져 왔지만 그 어느 경우에도 이에 대해 우리 헌법의 평등조항이 발동됐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 시민과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있는 법들, 미국 헌법의 기준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민의 자유를 제약하는 수많은 법들이 공공연히 제정돼 기득권을 위해 악용되고 있지만 우리 헌법이 이에 대해 칼을 빼드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우리가 이상으로 하는 사회,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는 우리 헌법에 다 정해져 있다. 그 법을 제대로 지키면 우리 사회가 이상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것을 법치라고 하는 것이다. 법치는 헌법의, 법원의 활동이 커질 때 비로소 제대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에 의해서만 사회 개혁을 이루고자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묻게 된다. '우리에게 헌법은 있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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