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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끼리 떠나는 '과거로의 여행' : 안동 하회마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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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하회마을.

조선시대 대표적 명문가인 풍산(豊山) 유씨(柳氏)의 세거지로 6백여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외국인들에겐 '한국에서 가장 한국적인 마을'로 알려져 있다. 낙동강이 마을 서쪽을 Ω형으로 휘감아 돌아 '하회'다.강물(河)이 돌아(回)나가는 곳이란 뜻이다. 하회마을은 요즘 화창한 봄날씨 만큼 활기가 넘친다.3년 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방문 이후 관광객이 꾸준히 늘어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폭발적이라고 할 만큼 증가하고 있다. 중앙고속도로의 개통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하회마을이 여느 민속촌과 다른 것은 양반들의 집단 거주지이면서 후손들이 지금도 살고 있다는 점이다.'전시용' 마을이 아니라는 얘기다. 동네 입구에 버티고 서 있는 '북촌댁'. 중요민속자료 84호인 이 집은 사랑채·안채·문간채·사당·별당 등을 두루 갖춘 입구(口)자 모양의 조선시대 양반집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양진당'(養眞堂)과 '충효당'(忠孝堂)은 이 동네의 중심이자 정신적 지주격인 집들이다. 양진당은 풍산 柳씨의 대종가로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선생의 형이자 조선조 학자 겸암(謙菴) 유운룡(柳雲龍)선생의 종손이 살고 있다.

그런 만큼 조선 양반집의 전형을 보여준다. 솟을대문과 우람한 건물들은 위압감까지 느끼게 한다. 조선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원래 정남향의 99칸 집이었지만 지금은 53칸만 남아 있다.

안채로 들어가는 통로를 두개의 벽이 엇갈리도록 만들어 부녀자와 볼 수 없도록 하는 등 당시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충효당은 조선조 좌·우의정을 지낸 서애의 종택. 안채는 사랑채 마당에서 왼쪽으로 두개의 문을 지나 역시 口자 형태로 들어서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일부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식당이나 민박을 하고 있다. 75%는 柳씨의 후손들이다. 초가가 기와집보다 많긴 하지만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거대한 북촌댁이 입구를 막아선데다 웅장한 기와집이 압도하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다.

권정준(權正俊·50) 하회마을관리소장은 "초가가 거대한 기와집 사이에 끼어 보일 듯 말 듯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 하회마을"이라고 말한다.

전통마을의 이미지는 장독대 등 소담스런 풍경과 대문마다 붙여진 '화풍감우'(和風甘雨)·'입춘대길'(入春大吉)등의 기원문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전통마을이라고는 하지만 누가 누구를 통제하는 식으로 살아가지는 않는다. 몸에 밴 전통방식 생활을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權소장은 "하지만 이 마을 대종가의 종손 말은 법에 가깝다"며 "자유분방함 속에서도 엄한 조선의 풍속은 그대로 살아 있는 셈"이라고 귀띔한다.

이 곳 주민들은 오는 19일부터 열리는 '물돌이 축제'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들은 "'동·서양 문화의 만남'을 주제로 한 축제를 통해 하회마을을 세계 속의 '전통마을'로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안동=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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