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부총리 정치 뛰어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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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진념(陳稔)경제부총리의 거취에 경제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 그를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거에 내보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陳부총리는 일단 "출마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陳부총리 영입을 집요하게 추진 중이고, 陳부총리는 이 때문에 곤혹스러워하는 상황으로 전해진다.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 경륜과 지식을 바탕으로 정치에 참여해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취지나 모양새부터 석연치 않다. 민주당의 陳부총리 영입론자들은 한나라당의 유력한 후보와 경쟁하려면 중량급 인사가 나서야 한다고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민주당이 陳부총리를 점찍으면서 경제는 얼마나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陳부총리가 출마하려면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하고, 그러면 개각이 불가피하다.1·29 개각을 단행한 지 석달도 안돼 경제팀 수장이 바뀌는 셈이다. 경제장관들의 연쇄 이동이 불가피해지고, 경제정책의 일관성 유지도 어렵다.

요즘 우리 경제는 다행히 회복세를 타고 있다. 하지만 분야별로 들어가면 불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동산 값이 치솟고, 선거철을 맞아 물가도 걱정이다. 반면 수출·투자는 여전히 부진하다. 부실 기업·금융기관 매각과 공기업 민영화 등 현안도 즐비하다.

따라서 수출 회복을 꾀하면서 그 여파가 국내 경기 과열을 낳지 않도록 각종 경제정책을 세심하게 조율해야 하는 복잡미묘한 과제가 놓여 있다. 이런 일을 하려면 정책의 일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陳부총리를 수장으로 하는 현 경제팀이 정권 말기의 마무리 팀으로는 그만이라는 평가도 있다. 여러모로 경제팀을 교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진행되는 것도 문제다. 정치는 자원해서 해야지, 등 떼밀어 시킬 일은 아니지 않은가. 더 큰 문제는 선거 때마다 '전략·취약지구 공략'이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관료들을 징발하는 관행이다.

지난 16대 총선 때의 강봉균 전 재경부장관과 15대의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가 그 예다. 훌륭한 사람들도 정치판에 끼었다가 낙선하면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당선된다 해도 우리 정치 풍토에선 변두리에 머물기 십상이다.'초선의원'이라는 이유로 직업이 '정치'인 사람들에게 밀려 뜻을 펴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아가 경제관료들을 차출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공직을 정계 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공직자들이 공천권을 따기 위해 정당의 눈치를 보는 현상이 벌어진다면 정책의 중립성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陳부총리의 경우 경기도 출신도 아니다. 과천의 경제부처에 오래 근무해 과천사람으로 간주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고향은 전북이고, 집은 서울이다.

청와대에서는 陳부총리 출마 문제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고 한다. 다행스런 일이라고 본다. 陳부총리 출마는 곧 개각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결심이 없으면 어려울 것이다.

陳부총리는 얼마 전 미국 신용평가 회사인 무디스를 방문, 한국의 신용등급을 올려줄 것을 요구하면서 "정치 일정에 관계없이 경제는 제대로 갈 것"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두단계 올라가자 마자 陳부총리가 정치에 뛰어든다면 미국 사람들은 또 뭐라고 생각할 것인가. 결국은 본인에게 달린 문제라는 점에서 陳부총리의 현명한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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