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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생들이 여자대학으로 간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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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번 학기 이화여대에서 '연극의 이해'수업을 들은 학생 90여명 가운데 연세대 복학생 공진기(26.컴퓨터공학)씨는 유일한 '오빠'였다. 10명이 조를 짜 발표한 연극 '페드르'에서 남자 주인공은 당연히 공씨의 차지였다.

학기 초 강의실에 올 때면 여학생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으나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건물마다 붙어있던 '20시 이후 남학생 출입금지'안내문이 사라졌고 경비원도 도서관을 드나드는 공씨를 더는 막지 않는다.

대학 간 학점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여자대학을 찾는 남학생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올 2학기 이화여대에서 13명, 숙명여대에서 26명, 덕성여대에서 4명의 남학생이 수업을 들었다.

이대는 올해부터 연세대.서강대와, 숙대는 1999년 KAIST와 교류를 시작하면서 '금남(禁男) 원칙'을 깼다. 대학원 교류까지 합치면 6개 여자대학의 남자 수강생은 모두 250여명.

숙명여대.덕성여대 등은 전공 수업을 포함한 모든 강의를 10여개 대학에 개방했으며 올해 43개 교양강좌를 개방한 이대는 내년에는 모든 교양강좌 정원의 10%를 연세대.서강대생을 위해 비워두기로 했다.

남학생들의 여대 진출은 일단 성공적이다. 이대에서 195명의 여학생 틈에 끼여 '오페라의 이해'를 수강한 연세대 양준희(법학2)씨는 권혜영 교수의 배려로 무사히 학기를 마쳤다.

'여자친구 구하러 왔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구석자리에 앉던 양씨에게 권 교수는 한가운데 앉도록 했다. 권 교수는 "두 명의 남학생이 수업에 활력을 더해줬다"며 "조교를 몰래 찾아와 남학생 옆에 앉을 수 있도록 부탁하는 여학생도 있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에서 '문화산업의 이해' '문학과 사랑의 테마'를 수강한 홍익대 4학년 신현우(27.전기전자)씨는 "남녀의 시각차가 생길 수 있는 수업은 여대에서 들어볼 만하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이화여대 김애진(19.경영학부)씨는 "남학생과 함께 수업을 들으면서 수업 분위기도 좋아졌고 정보교환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국내 여대의 남학생 증가는 외국 대학과는 비교된다. 미국 웨슬리 여대는 40여년 전부터 뉴잉글랜드 지역 12개 대학과 학생교류를, 95년부터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학점 교류를 시작했으나 수강하는 남학생이 거의 없다.

1874년 설립된 오차노미즈 등 일본의 주요 여대는 여전히 '금남의 벽'을 지키고 있다.

임장혁.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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