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두 개의 조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1956년 국제축구연맹(FIFA)이 레알 마드리드의 수퍼스타 디 스테파노의 스페인 국가대표 자격을 인정하자 축구계 여론은 일제히 들끓어 올랐다.

FIFA는 그 3년 전, 아르헨티나 대표 경력을 가진 디 스테파노가 콜롬비아 대표팀으로 국적을 바꿔 월드컵에 출전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적이 있었다. 이후 스페인 국적을 취득한 스테파노가 세계 최고의 골잡이로 명성을 날리자 FIFA가 대회 흥행을 위해 입장을 바꾼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은 1958년 대회 예선에서 탈락했고, 1962년에는 본선 직전 디 스테파노가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탈락했다. 결국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디 스테파노는 네 번의 월드컵에 세 나라 대표로 도전했지만 단 한 번도 본선 무대에 서지 못해 월드컵 사상 가장 불운했던 선수로 기억된다.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국적 변경으로 화제가 되는 선수들이 있다. 스타플레이어들이 돈에 팔려가는 일을 막기 위해 FIFA는 한 번이라도 A매치 경기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선수는 다른 나라 대표로 출전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하지만 태어난 환경 때문에 두 개의 국적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80년대 정상의 미드필더였던 엔조 시포는 부모가 이탈리아 출신인 벨기에인이었으므로 양쪽 모두 출전할 수 있었으나 “동료들이 더 중요하다”며 이탈리아의 러브콜을 거부했다. 결국 그는 1986년 약체 벨기에를 세계 4강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가나 대표팀의 케빈프린스 보아텡과 독일 대표 제롬 보아텡은 친형제간이다. 이들은 모두 독일 청소년대표 출신이지만 형 케빈프린스가 손쉬운 대표 선발을 위해 부모의 조국인 가나 출신으로 뛰겠다고 선언, 이들은 같은 조에서 결전을 펼치게 됐다.

지난 16일엔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북한 대표 정대세가 경기 전 흘린 눈물이 화제가 됐다. 남한 국적이면서 북한 대표로 뛰고 있는 재일교포 3세 정대세는 눈물의 이유를 “드디어 이 자리에 왔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벅찼다. 축구를 시작한 뒤로 이런 큰 무대에서 브라질 같은 팀을 상대로 뛰게 될 줄은 몰랐다”고 설명했다. 그 눈물이 큰 반향을 일으킨 건 이념이나 분단 비극보다는, 축구에 인생을 걸어 꿈을 이룬 한 청년의 패기가 신선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송원섭 JES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