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지금까진 ‘공포의 균형’이 변화를 막았다. 외환보유액에서 특정한 돈을 줄이고 여러 통화로 다극화하려는 시도가 시장에 큰 충격을 주기에 중앙은행들이 감히 달려들지 못했다는 소리다. 특히 최근엔 유로화 위기 때문에 준비 통화가 다극화되어도 시장에서 안착할 것이란 시각이 흔들리고 있다. 유로화를 많이 보유한 아시아와 중동의 중앙은행들은 떨고 있다. 물론 미국의 눈덩이 재정적자를 볼 때 달러화도 잠재적으로 취약하긴 마찬가지다.
이럴 땐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교훈을 찾을 수 있다. 1960년대에 영국의 파운드화는 세계 2위의 준비 통화였다. 미국 정책가들은 파운드를 떠받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쏟았다. 파운드화를 흔드는 상황이 생기면 달러도 위태롭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파운드화는 달러의 방어막 일부로 들어왔다. 그걸 본 비판론자들은 “절뚝거리는 두 오리가 서로를 떠받치고 있다”고 비꼬았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유럽 지도자들과의 전화통 외교에서 유로화를 구출하라고 압박했는데 이는 60년대 오리 얘기를 떠올리게 한다. 나아가 오바마의 전화는 유럽에서 공조책을 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2의 준비 통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특별한 사건이었다. 유로권이 무너지면 미국 경제도 낭떠러지에 서게 된다. 절뚝거리는 오리들이 서로를 껴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제 60년대 사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언제 어떤 통화가 새롭게 부상하는지 말이다. 당시 파운드화는 결국 통치권을 잃었다. 대신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은 그런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봤지만, 한편으론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여겼다. 엔과 마르크의 부상은 인플레이션 고통을 불렀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겨우 20년 만에 일어났다. 두 나라는 엄청난 수출 실적을 자랑했다. 무역 흑자가 쌓이면서 달러와 파운드보다 탄탄한 기반을 갖게 됐다. 계속 늘어나는 수출로 쌓인 양국 재산은 그들의 통화에 대한 보증수표와 같았다. 달러·파운드화와 달리 엔·마르크화는 외국 자본 유치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준비 통화로 부상하면서 그만큼 대외 취약성은 커졌다. 그래서 일본과 독일은 국내 금융시장 자유화에 소극적이었다. 해외 자본이 밀려 들어와 자국의 화폐 가치가 급격하게 올라가고, 그 결과 수출이 줄어드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해럴드 제임스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사 교수, 『세계화의 종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