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마다 서바이벌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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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화그룹 25개 계열사의 자산규모는 11조원 가량 된다. 한화가 인수하고 싶어하는 대한생명의 자산규모는 21조원. 한화가 대생을 인수하면 그룹의 주력이 제조업에서 금융업으로 바뀐다.

롯데·한화·두산 등 주요 그룹들이 주력 업종을 바꾸거나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아 나서는 등 발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전경련 양세영 기업경영팀장은 "각 그룹들이 외환위기 이후 생존 차원에서 벌여온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면서 자금 여유가 있는 그룹을 중심으로 신규사업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면서 "일부는 미래 성장산업을 찾아 그룹의 간판을 바꾸려고 한다"고 말했다.

◇간판 업종을 바꾼다=한화는 대한생명 인수에 전력을 쏟고 있다. 여차하면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현금만도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는 이 유동성을 몇달째 유지하면서 대생 인수 꿈을 키우고 있다. 대생을 인수해 증권·투자신탁운용·파이낸스·창업투자 등을 아우르는 금융그룹으로 변신하겠다는 것이다.

한화 관계자는 "경쟁 컨소시엄인 메트라이프가 입찰을 포기했기 때문에 협상대상으로 한화만 남았다"며 "조만간 결론이 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화는 대생을 인수할 경우 창립 50주년을 맞아 아예 그룹 이름까지 바꿀 작정이다. 또 부동산 유동화와 비수익사업 정리를 통해 올 상반기 중 5천억~1조원의 '실탄'을 확보키로 했다.

제강·화학·건설 등 비금융 부문의 비중이 60%인 동부는 컨소시엄을 만들어 서울은행 인수 경쟁에 뛰어드는 등 금융그룹으로의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동부는 3백81개 기업 등으로 이미 인수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출신의 기업인 장기제씨를 각각 금융부문 회장과 부회장으로 영입하는 등 금융인맥 구축에도 열을 쏟고 있다.

또 크레딧스위스퍼스트증권(CSFB) 출신의 조원구씨를 ㈜동부 부사장으로, 삼성생명 출신의 장인수 부장을 동부화재 상무보로 영입했다.

동부 관계자는 "지난 1월 서울 대치동에 신축한 동부금융센터에 고객들이 보험·증권 등 금융서비스를 한 장소에서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센터를 만들었다"며 "금융 부문의 매출 비중을 그룹 전체의 절반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원양어업 등 식품 전문인 동원도 금융 계열사를 앞세워 독자적으로 서울은행 인수에 뛰어들었다.

동원 관계자는 "서울은행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2천여억원보다 훨씬 많은 자금을 가지고 있다"면서 "은행 인수를 비롯해 그룹의 주력사업을 금융업으로 삼기 위한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술·식품 전문이던 두산은 이미 산업재 제조그룹으로 변신했다.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액(6조3천억원)에서 두산중공업(매출액 4조7천억원)이 75%의 비중을 차지했다.

두산 김진 상무는 "발전설비와 담수화설비를 그룹의 미래 핵심사업으로 정했다"면서 "그룹의 대명사였던 맥주사업에서 철수한 것과 마찬가지로 수익성이 없는 사업은 언제든지 포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사업에 진출한다=다른 그룹에 비해 자금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롯데그룹 등은 주력사업을 그대로 두면서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고 있다.

부채비율이 75% 수준인 롯데는 신용카드사업과 소주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현대석유화학 인수도 타진하는 등 사업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현대석유화학을 인수할 경우 계열사인 호남석유화학과 합병할 계획이다.

롯데는 또 진로와 두산이 경쟁하고 있는 소주시장에도 끼어들고 싶어한다. 기존 소주회사를 인수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관계자는 "백화점·제과·칠성·삼강 등 4개 계열사가 지난해 4천억원 가량의 순이익을 남겼다"면서 "유통과 식품업을 주축으로 삼아 새로운 성장산업을 찾기 위해 경제연구실을 설립하는 등 태스크포스를 가동 중"이라고 밝혔다.

제일제당은 신유통,식품·제약·바이오,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등을 3대 주력사업으로 정하고 신유통 부문(CJ39쇼핑·CJ GLS)에 기존 주력사업(식품·제약) 부문과 엇비슷한 규모인 1천2백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김동섭·표재용·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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