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인력 불리기'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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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구조조정을 통한 예산 절감을 외쳐온 지방자치단체들이 슬그머니 조직과 인력 늘리기에 나서고 있다. 정부 방침에 따라 199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전체 지방공무원의 19.4%(5만6천여명)를 줄인 지 1년도 되지 않아 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몸 불리기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단체장이 6월 지방선거에 나서는 자치단체 가운데 일부는 인사 적체를 해소해 단체장의 인기를 높이려고 조직 확대를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행정수요의 변화에 따라 인력·조직의 탄력적인 운용은 불가피하나 총 정원 범위 내에서 효율적인 재배치가 아닌 단순한 숫자 늘리기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태=전북도는 지난해 8월 김제공항건설지원사업소를 만들어 내년 12월까지 운영키로 하고 직원 12명을 채용하는 등 지난해 이후 79명의 공무원을 늘렸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소방공무원 62명을 뺀 17명은 기존 인력을 활용하면 가능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증원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부산시는 지난달 21일 체육시설관리사업소 인력을 31명 늘렸다. 부산시 허남식(許南植)기획관리실장은 "올해 완공하는 두개 경기장(금정·강서)을 관리할 인력이 새로 필요해 정원을 확충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기장 완공은 이미 예정된 사업이었는데도 인력을 줄인 뒤 다시 채용함으로써 행정 낭비를 자초한 꼴이 됐다.

이처럼 부산시와 산하 16개 구·군이 올들어 행정자치부에 증원을 요청한 인력은 1백55명에 이른다.충남 보령시는 민간 위탁이 바람직한 천연 머드 화장품 생산과 판매를 맡을 지방공사를 설립키로 하고 8월까지 직원 20명을 채용할 방침이다.

불요불급한 국(局)·과(課)를 폐지하려는 중앙정부의 방침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있다. 대구 중구청은 지난해 말 개정된 정부의 '지자체 행정기구 및 정원에 관한 규정'에 따라 2004년까지 3개 국이 없어지게 되자 "일방적인 구조조정"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이 구청은 부산시 중구·인천시 중구 등 전국 4개 광역시 자치구와 연대,이달 중 행자부에 반대 건의안도 낼 계획이다.

또 경기도 내 일부 시·군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단체장 측근 자리용이나 직원들의 인사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신도시 개발을 구실로 조직 신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점=일부 자치단체에서는 구조조정 때 감축한 분야의 인력을 재보강하거나 민간위탁 가능 시설을 직영함으로써 인력 수요를 늘리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외부의 과학적인 조직진단 없이 해당 자치단체의 요구에 따라 광역단체 등의 승인만 받으면 가능한 단순한 절차 때문에 자치단체의 조직·인원 불리기가 쉽게 이뤄지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최근 열린 전국 시·도 행정부단체장 회의에서 "행정 기구 및 인력 운용의 감축 기조를 유지해 달라"고 각 자치단체에 지시했다. 영산대 행정학과 최길수(崔吉洙·전 정부혁신추진위 전문위원)교수는 "자치단체들이 구조조정을 끝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과거로 돌아가면 과거의 행정 비효율성이 되풀이된다"고 말했다.

최준호·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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