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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노대통령 장인 과거사…PD수첩 '친절한 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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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MBC 'PD수첩'은 14일 밤 '권오석 다큐와 과거사 규명'편을 내보냈다. 한국전쟁 중 벌어진 치안대 양민학살사건에 연루됐던 남로당원 권오석(1971년 작고)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장인이다. 최근 인터넷 언론 '독립신문'은 다큐멘터리 '노(盧) 장인 권오석 민간인 학살, 진실을 말한다(가제)'를 만들었고, 이는 지난 4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에서 상영됐다.

이를 계기로 14일 방영된 'PD수첩'이 만들어졌다. '유가족들의 아픔이 현 정권을 좌파정권으로 규정하는 도구로 사용돼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방송 전 제작진은 "과거의 아픈 역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경계하고, 진정한 과거사 규명의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모색해보고자 한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하지만 방송이 끝난 뒤 인터넷 게시판에는 "편향된 의도로 제작된 프로그램"(ID URANUS97), "노 대통령 장인의 과거사는 그 시대 아픔의 하나였다는 물타기 방송"(DANBAEK) 등 시청자들의 항의 글이 빗발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방송의 상당 부분은 '보도연맹사건'으로 채워졌다. 권씨가 관련된 치안대 사건 한달 전에 같은 마을에서 우익에 의한 보도연맹 학살 사건이 발생했고, 권씨 일가 중 일부가 희생됐다는 것이다. 치안대 학살 사건이 보도연맹 사건에 따른 보복심리에 의한 것이라는 주민들의 주장을 내보냈고, 권씨의 좌익행적이 과장됐을 가능성도 다뤘다. 또 "한국전쟁 중 좌익에 의해 10만명, 우익에 의해 90만명의 민간인이 학살됐다"는 한 시민단체의 주장도 전파를 탔다.

송일준 책임프로듀서는 "우리 사회 반목과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하루빨리 과거사 진상규명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방송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좌익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보다 우익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이 더 많고 잔혹했다는 인식을 갖기 쉽게 만든다"(LSH7079)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정치적 악용을 경계하겠다던 프로그램이 도리어 정치적 논란을 부른 셈이다. '기획의도'를 의심하지 않고 과거사를 다룬 프로그램을 볼 날은 언제 올 것인지. '균형'과 '공정'이란 진부한 덕목이 아쉽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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