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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이스라엘에 정착한 외국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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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피스캇체프·나자레스=이훈범 특파원]시몬 두드케비치(61)는 히브리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유대인이다. 러시아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떠나 이스라엘에 정착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아는 단어라고는 '샬롬(안녕하세요)'과 '토다(감사합니다)'가 전부다.하지만 그는 생활하는 데 거의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시장이나 관공서·은행 등 어디를 가도 러시아어가 통한다. 러시아 출신 동포들이 어디에나 있다. 러시아어를 하면 오히려 더 친절히 대해 준다."

이스라엘 내 러시아 출신 이민은 1백30만명이나 된다. 이스라엘 국민 5명 중 1명이 러시아 출신인 셈이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이스라엘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이민 유인정책 때문이다.

어느 슈퍼마켓에서도 러시아 음식을 살 수 있고 서점·음반가게에는 러시아어 책이나 가요 테이프가 널려 있다. 러시아어 일간지만 3개고, 주간지는 30종, 지역신문은 1백종이 넘는다.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 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채 자기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아 이웃 주민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특히 거실과 창문을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하고 서양력으로 새해를 축하하는 풍습은 유대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들이 모여 사는 피스캇체프 정착촌의 이스라엘 출신 주민인 레나 샤울(48·여)은 "러시아 출신인 친구집에 놀러갔던 아이가 유대교가 금지하는 돼지고기 요리를 대접받고 질겁해 도망쳐온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스라엘 국민 5명 중 또 다른 1명은 아랍계 이스라엘인이다. 이스라엘 건국 당시 떠나지 않고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한 팔레스타인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갖고 있다. 그들의 50년 숙원사업인 아랍어 TV방송은 여전히 가능성이 보이지 않지만 러시아어 TV는 10년 만에 개국을 앞두고 있다. "우리가 가진 이스라엘 국적은 아무 의미가 없다. 검문소의 군인들은 우리를 테러범 취급한다. 가로등 전등 하나를 갈아도 아랍인 거주지역은 맨 꼴찌다." 나자레스에서 만난 대학생 이사 라하마드(24)는 "군인들이 유대인 지역에서는 탱크를 트럭에 싣고 다니지만 아랍지역에서는 탱크가 도로를 파헤치며 마구 달린다"고 분노했다.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의 불만은 이들을 점점 더 이스라엘 정부에 등을 돌리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지난 선거에서 에후드 바라크 총리가 패배한 이유 가운데에는 이들이 벌인 조직적 기권운동 탓도 크다.

이스라엘에서 저소득층에 속하는 러시아 이민들과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은 정치이념에서도 상극이다.러시아계 정당인 '이스라엘 우리집'은 팔레스타인에 대해 샤론 총리보다 더한 강경노선을 취하고 있다.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이들 두 소수그룹을 어떻게 융화시키느냐가 이스라엘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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