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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라,옛 여인숙 운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여인숙(旅人宿)이란 말은, 우리 고유어는 아니지만 얼마나 운치 있는가. 나그네가 묵어 가는 곳.

그런 의미의 여인숙이 지금은 간판조차 거의 볼 수 없이 사라져가면서, 매춘을 일삼는 싸구려 숙소쯤으로 인식돼 버렸다. 말이란 사람이 쓰기에 따라 이렇게 느낌이 변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가운데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푸른 대문'은 그런 여인숙의 서러운 모습을 더욱 서럽게 그려내 주었다.

얼마 전 미국과 일본을 들르는 짧은 여행에서 돌아오며, 이런 것이 국제화의 하나라면 나는 차라리 문화쇄국주의자가 되겠다고 결심 아닌 결심을 했었다. 국제화나 세계화를 피할 수 없는 당위이며 필연처럼 내세우는 현실이지만, 이렇게 세계가 '동일체'가 돼야만 하는가 묻고 싶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내가 묵던 호텔 옆에는 길목마다 스타벅스 커피점이 네개나 있었다. 사람들을 가득가득 채우고.

도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에서 본 것과 똑같은 간판에 똑같은 종이컵에 거의 똑같은 실내장식을 한 스타벅스 커피점이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전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만나게 되는 햄버거 집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똑같은 스타벅스 커피점이 이제는 광화문에, 신촌에, 강남에 우뚝우뚝 들어서고 있다.

전세계를 휩쓸어 버린 소설과 영화 '해리포터'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특히 일본에서 세권의 시리즈로 나와 지난해에 1천만부를 넘어서는가 하면, 영화가 개봉된 12월 한달에만 2백25만부가 팔려나갔다.

햄버거와 스타벅스와 해리포터. 실시간대에 전세계인이 똑같은 것을 먹고 마시고 읽는다. 이것은 얼마나 비참하고 전율할 일인가.

일본의 여관은 몇가지 특색을 가진다. 우선 저녁식사가 끼여 있다. 거기에 여종업원이 목욕물을 받아 주고, 저녁이면 이부자리를 펴 준다. 건물은 물론 정원도 전통적인 일본식이다.

저녁식사는 그곳 특산물을 재료로 한 토속음식이 꼭 나온다. 그러므로 규슈(九州)에 가면 '마사시'라는 말고기 회를 먹을 수 있다. 도예가 심수관 선생을 취재하기 위해 가고시마의 여관에 한 주일 머물렀을 때는 민물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곳에서나 잡힌다는 귀한 생선을 매일 저녁 맛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들만의 '잠자리'가 없다. 지방에 가면 묵게 되는 호텔이나 여관에는 그곳의 풍취가 전연 없다. 경주 보문단지의 어느 호텔에는 투숙객을 위해 가운이 아닌 일본의 유카다(浴衣)를 비치해 놓고 있었다. 그 재벌 그룹이 망했기에 얼마나 다행인가.

안동에서 한시간 남짓한 거리에 '지례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한 시인이 안동댐 담수로 수몰위기에 처한 선조들의 고택을 옮겨놓고 조촐하게 숙식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몇년 전 가족과 함께 그곳에서 새해를 맞은 적이 있었다.

아침이 되자 맨 위쪽에 자리한 사당에서는 후손들이 가득 모여 차례를 올렸다.3백년이 넘는 고택의 처마에서 참새가 울었다. 아침상에는 안동 특유의 간고등어와 문어 초절임이 나왔다.

햄버거와 스타벅스와 해리포터에는 전율할 만한 공통점이 있다. 소비절차의 간편함이다. 이것을 시간의 경제성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거기에서 사라지는 것은 문화다. 나이프와 포크를 필요로 하지 않는 햄버거. 이 단순성은 거의 야만적이다. 우아한 찻잔은커녕 셀프서비스로 종이컵에 담아 마시는 스타벅스 커피도 야만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다감하고 멋스런 한옥에서 정갈하고 상큼한 한식을 내놓는 그런 숙소를 문화로 키워갈 수는 없는 것일까, 그곳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세계와의 보편성을 함께 공유하는.우리의 먹거리, 우리의 잠자리… 그런 것들로 가득한 우리의 여인숙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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