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열병 앓는 셰익스피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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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셰익스피어 인 러브 (KBS2 밤 10시)

셰익스피어가 만약 사랑의 열병을 심하게 앓지 않았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명작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가정에서 출발한다. 귀족 출신 여배우를 사랑한 혈기방장한 한 젊은이의 인습을 뛰어넘는 열애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천재성보다는 인간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게 신선하다. 그의 작품이 영화화된 적은 많았어도 작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건 이 영화가 처음이다.

정교하게 재현한 16세기 영국의 고전 의상에 귀네스 팰트로·주디 덴치 두 여배우의 우아한 연기가 더해져 유쾌하면서도 품격을 갖춘 작품으로 탄생했다. 아카데미 13개 부문 후보에 올라 7개 부문을 휩쓸었다. 주연상(팰트로)·조연상(덴치)은 물론 각본·의상디자인·작곡상 등 작품이 가진 장점에 걸맞은 상을 받았다. 슬럼프에 빠진 극작가 셰익스피어(조셉 파인스)는 부유한 배우 지망생 바이올라(팰트로)와 사랑에 빠진다. 연극 대사를 청산유수로 외울 만큼 재기넘치는 바이올라는 가난한 귀족 웨섹스경(콜린 퍼스)과 정략 결혼할 처지다. 셰익스피어의 바이올라를 향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깊어지면서 그가 쓰고 있던 희곡의 줄거리도 바뀌게 된다. '로미오와 해적의 딸 에델'이라는 코미디로 출발했던 희곡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비극으로 변하는 것이다. 바이올라는 셰익스피어의 또다른 작품 '십이야(十二夜)'의 여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 1998년작. 원제 Shakespeare in Love. ★★★☆(만점 ★5개)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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