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사고뭉치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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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밴디츠(Bandits)'는 액션 영화처럼 시작한다. 교도소에 수감된 조(브루스 윌리스)와 테리(빌리 밥 손튼)가 레미콘 트럭을 훔쳐 교도소 철망을 부수고 탈옥하는 장면을 시원스럽게 잡아낸다. 또 은행 강도들의 인질극을 클로즈업한다. 경찰에 포위당한 일당들 위로 헬기가 순회한다.

그러나 이것은 '무늬'일 뿐 '밴디츠'는 코믹한 분위기로 일관한다. 여기에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양보할 수 없는 삼각 관계가 중첩된다. 보기 좋고 먹기 좋은 음식상을 차렸다고나 할까. 겉은 은행 털기라는 액션으로 포장하고, 속은 알콩달콩한 사랑으로 채운 것이다.

'밴디츠'의 매력은 생생한 캐릭터다. 『노자』 『손자병법』을 탐독하는 거칠고 강한 남성형의 조와 각종 질병에 걸릴 것을 두려워하는 섬세하고 소심한 남성형의 테리가 이항 대립을 이루고, 그 사이에 변호사 남편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새로운 사랑을 갈구하는 낭만파 여성 케이트(케이트 블란쳇)가 끼어든다.

살아 숨쉬는 사람이기보다 여러 유형의 사람을 대변하는 우화적 설정임에 분명하지만 영화는 그들 각자를 풍부한 에피소드로 감싸안으며 생동감을 잃지 않는다. '레인 맨''굿모닝 베트남' 등의 수작을 빚어낸 배리 레빈슨 감독의 저력이 여전해 보인다. 각종 노이로제에 사로잡힌 테리로 나오는 빌리 밥 손튼의 몸짓에선 감칠 맛이 느껴진다.

'밴디츠'는 로드 무비 형식을 따른다. 탈옥수 조와 테리, 조의 사촌동생인 어리숙한 스턴트맨 하비(트로이 개리티)가 은행털이단을 결성하고, 여기에 케이트가 우연히 합세하면서 얘기가 진척된다.

말이 은행 강도지 이들은 총과 칼을 쓰지 않는다. 범행 전날 '목표'로 삼은 은행장의 집에 들어가 그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고, 다음날 은행장과 함께 출근해 금고 속의 돈을 가지고 나온다. 그런 행각 가운데 조와 테리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케이트가 부각된다.

영화는 형식적으로도 평균 이상이다. 이들을 뒤쫓는 TV 뉴스가 중간중간 삽입되면서 단조로운 흐름을 막고, 마지막에 준비된 유쾌한 반전도 '후식'으로 적당하다. 12세 이상 관람가. 29일 개봉.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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