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주의 영화에 재미·감동 더하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어제 서울 광화문 소재 아트큐브에 전화를 했습니다.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언제까지 하죠?" 돌아오는 대답은 "벌써(개봉 일주일 만인 7일) 내렸는데요"였습니다. 다시 부산 시네마테크로 연락했습니다. "다음달 5일까지(12일 개봉) 갑니다."

개봉 첫날 서둘러 보길 잘 했다는 안도감은 잠시-.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1999년 베니스영화제 '새로운 분야' 공식 초청에 이어 2000년 스위스 프리부르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전수일 감독의 영화 '새는…'이 3년 만에 가까스로 잡은 상영의 '성적표'가 이러했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영화관에 간판을 올려보지도 못한 채 나뒹구는 필름이 한둘입니까.

작가주의 영화를 말하려 합니다. 그것은 감독을 작가로 보고 감독의 개성이 곧 영화의 색깔로 묻어나는 영화를 지칭합니다. 이 용어는 프랑스의 영화 감독 프랑수아 트뤼포가 1954년 한 영화잡지에서 처음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간혹은 예술영화·저예산영화 등과 혼동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경우 임권택 감독을 비롯해 김기덕·홍상수·이창동·전수일 감독 등이 대표 주자로 손꼽힙니다.

'새는…'은 마치 이미지로 만든 철학 텍스트 같습니다. 지방대학 영화 교수인 김(설경구)과 중학교 교사인 영희(김소희)가 벌이는 무기력한 사랑 얘기입니다. 유부남인 김과 영희는 통정(通情)하고 결국 영희는 임신을 합니다. 영희는 김과 함께 시골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에서 김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김과 영희의 일상은 무미건조합니다. 섹스조차 절망의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작 영화는 '베버의 쇠 감옥'을 떠올리게 합니다. 쇠 감옥은 불합리한 권력의 속성을 상징합니다. 모두가 거기에서 빠져나오질 못합니다. 전감독이 김의 어린 시절 기억과 오늘의 절망을 맞물리게 해놓고 전하는 메시지도 비슷합니다. "새들도 결국은 자신이 그린 지도에 따라 움직이는 것에 불과해." 하늘을 나는 새조차 어딘가에 갇혀 있다는 것. 바로 출구가 없는 곡선(폐곡선)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의 건조함과 비틀림은 이 땅의 작가영화 현실과 흡사합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길을 잘 못 들어선 것 같은 한국형 블록 버스터의 그늘에 서 있습니다. 관객들이 영화의 리듬과 드라마를 외면한 채 비주얼과 스펙터클로 승부수를 띄운 상업영화로 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가영화에 산소 호흡기를 대야 한다는 주장이 그치질 않습니다.

지난해 '와라나고'(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라이방''나비''고양이를 부탁해'의 첫 글자)운동이 일면서 작가영화에 대한 시선을 달리할 기회도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속 가능한 운동으로 자리를 잡진 못한 것 같습니다.

하나의 대안으로 아트 커머셜(상업성을 곁들인 작가영화) 논의가 나옵니다. 작가영화가 관객과 소통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문득 감독의 혼에 재미와 감동이 함께 어우러지는 영화를 만나고 싶습니다.

대중문화팀장

추신:시네마테크 떼아뜨르 추의 '감독의 힘!'기획 영화제에서 전수일 감독의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를 상영합니다. 다음달 2일부터 14일까지입니다. 02-325-5573~4.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