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완벽한 자기관리 월드스타 강 수 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영화 ET에 나왔던 아역 배우들이 개봉 20주년을 맞아 다시 한 자리에서 만났다. 당연한 일이지만 ET만 안 변하고 배우들의 얼굴은 다 달라졌다. "그 귀엽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는가." 관객들은 재회의 반가움과 함께 가슴 한편에서 아련한 슬픔을 걷어내기 힘들었을 터이다.

어쨌거나 배우란 참 좋은 직업이다. 시간·공간 뿐 아니라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대신 겪으니 말이다. 게다가 동시대의 인물들에게 영상의 안팎으로 감정의 파장을 선사하지 않는가. 절정을 향해 치닫는 사극 '여인천하'를 보며 "도대체 저 연기자의 진짜 모습은 어떨까" 문득 궁금해지는 시청자가 적지 않을 듯하다.

친근한 이미지의 배우를 만나서 대화하다 보면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점점 거리가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거리감(거부감은 아니고 신비감에 가까운)을 느꼈던 연기자인데 막상 명시 거리 앞에서는 인간의 온기가 살갑게 전해져 오는 때도 있다.

강수연이 그랬다. 그녀를 소개하는 문구는 완전히 스테레오 타입이다. 스타도 그냥 스타가 아니다. 영상으로 나타난 강수연의 생활 기록부는 지극히 화려하다. 대종상을 네번씩이나 받은 것도 그렇지만 베니스·모스크바·낭트 등 세계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이른바 월드 스타.

듣는 이도 부담스러운데 본인이야 오죽 거추장스러울까. 솔직히 동정심(?)이 들 만도 한데 그런 정서의 잔해는 그녀가 앞자리에 앉는 순간 사뿐히 도망가 버렸다. 이것이 관록이라는 것인가(사전에서 관록(貫祿)이란 말을 찾아보니 '몸에 갖추어진 위엄'이라고 씌어 있다).

네 살 때부터 연기했으니 삼십 년 경력이다. 하지만 삼십 년 연기했다고 다 강수연처럼 되는 건 아니다. 끼도 있고 깡도 있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에는 목숨 걸고 달려드는 것이 '끼'이고, 하기 싫은 일이라면 목에 칼이 들어 와도 안 하는 것이 '깡'인데 그녀야말로 그 둘을 고루 지닌 사람이다.

사실 오늘날의 방송 제작 환경을 고려할 때 '강수연을 캐스팅했다'는 표현은 부정확한 말이다. 그녀를 TV 속에 끌어당기기 위해 수많은 제작진이 간절히 손짓했고 선택은 그녀가 한 것이므로 결국은 배우가 작품을 고른 셈이다.

PD 시스템과 스타 시스템은 충돌의 개연성을 늘 품고 있지만 역량 있는 PD와 스타는 서로를 알아보고 귀하게 대할 줄 안다. '여인천하'의 성공은 두 시스템이 서로 화해를 모색한 결과이다.

결벽증에 가까운 강수연의 자기 관리는 유명하다. 네 살 때부터 연기했지만 본인의 의지로 연기한 건 열여덟 살부터라고 한다. 왜 하필 열여덟 살일까. "열여덟 이후 겹치기 출연은 안 했어요." 그게 해답이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