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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벚꽃 축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잎사귀도 나기 전 새하얀 꽃망울부터 터뜨리는 벚꽃은 한국·일본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모두가 반가워하는 봄의 전령이다.

이번주부터 시작된 워싱턴의 '벚꽃축제(체리 블로섬스)'는 해마다 7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유명한 행사다. 백악관·제퍼슨기념관·의사당·워싱턴기념탑 등이 에워싸고 있는 타이달만(灣) 주변은 벚꽃 구경을 겸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학생들의 단체 관광버스로 주변 교통이 마비될 정도다.

벚나무들을 따라 타이달만 주변을 걷다 보면 다양한 이벤트를 접하게 되는데 행사의 주제는 대부분 일본과 관련이 있다. 재미 일본요식업협회가 주최하는 생선초밥과 일본 술 맛보기 대회, 일본 대사관·상공회의소 등이 주관하는 일본 전통음악 공연, 미국 학생 대상의 일본어 경연대회, 요시노·아케보노·콴잔 등 벚나무 수종 알아맞히기, 일본 도자기 전시회와 종이인형 접기 등 각종 행사가 끝없이 이어진다.

연신 "하이, 하이"를 외치며 허리를 숙이는 일본 안내원들의 상냥함에 가족과 함께 나온 미국인들의 입에서도 서투르게나마 "아리가토(고맙습니다)"라는 일본말이 나오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부러운 생각도 든다.

미국의 심장부에 일본 국화인 벚꽃이 만개한 배경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9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의 도쿄(東京)특파원이었던 시드모어 양이 당시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의 부인 헬렌에게 벚나무를 선물했고, 이를 계기로 일본 정부는 1912년 도쿄·워싱턴간 자매도시 협정을 맺으면서 12개 종 3천20그루의 벚나무를 미국에 선물했다. 대부분 포토맥 강변을 따라 심었는데 그 중 일부는 백악관과 대법원·의회도서관의 정원으로 옮겨져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태평양 전쟁을 치를 때도 이들 벚나무를 자르거나 다치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오히려 도쿄 대공습으로 상당수의 희귀종 벚나무들이 죽자 52년 일본으로부터 받았던 같은 종류의 벚나무 중 8백그루를 일본에 돌려주기도 했다.

벚꽃 구경을 나온 한 미국인에게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며 아는 체를 했더니 "자연은 그대로 즐기면 그만이지, 국가의 역사가 나무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와 좀 머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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