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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매혹시킨 '명주 역사 기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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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9면

명주에도 산실이 있다. 명주의 고향이다. 오묘한 맛은 거기서 나온다. 위스키는 더욱 그렇다. 위스키는 세계인의 술이 됐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 비결은 뭘까. 역사 속에 비밀이 있다. 위스키의 깊은 맛은 그 긴 뿌리에 기인하는 것이다. 명주는 대부분 몇 대를 이어 만든 한 집안의 술에서 발전한다. 그 역사의 끝자락에 마스터 블렌더들이 있다. 그들이 맛의 역사를 보존하고 가꾸고 발전시킨다. 명주를 즐기기 전에 그 고향을 찾아가 알아두면 술을 더 잘 맛볼 수 있다.

1822년 스코틀랜드 에딘버그의 한 언덕길을 올라가는 마차가 있었다.거기에는 13살의 한 사내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타고 있었다. 그는 깃이 빳빳하게 세워진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커다란 여행가방을 손으로 꽉 움켜잡고 앉아 있었다. 조지 발렌타인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에딘버그의 주류사업가 앤드류 헌터 아래서 일하게 되어 함께 가고 있었다.

조지 발렌타인은 거기서 5년간 아버지와 함께 견습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덕분에 좋은 와인과 위스키를 고르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조지 발렌타인은 1827년 에딘버그의 카우게이트에 식료품 및 주류점을 열었다. 19살이었다. 발렌타인 위스키의 시작이었다.

1853년 조지 발렌타인의 친구인 앤드류 유서가 숙성기간이 서로 다른 몰트위스키를 혼합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혼합해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드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조지 발렌타인은 이를 계기로 위스키 연구에 혼신을 쏟아 부어 새로운 블렌디드 위스키를 내놓게 됐다. 그 위스키의 라벨에는 그의 이름을 붙였다. 잡지 광고 등을 통해 그는 독자브랜드를 키워나갔고 판매를 늘렸다. 1881년에는 수출을 시작했다.

그의 몫은 여기까지였다. 조지 발렌타인은 1891년 에딘버그에서 생애를 마쳤다.

사업은 장남인 아키발드가 이어받았다. 그는 프린스 스트리트에 매장을 열고 고급 위스키의 이미지를 키워갔다.이어 발렌타인의 손자가 대를 이어 이 사업을 해나갔다. 발렌타인 가문이 가꿔온 술인 셈이다.

3대에 이르러 빅토리아 여왕이 스코틀랜드를 방문, '왕실보증서'를 주면서 발렌타인은 황실의 인증을 받게 됐다. 이를 계기로 발렌타인은 확고한 명성을 얻었으며 해외에까지 알려지게 된다. 그 덕분에 미국에서 인기있는 브랜드로 성장, 세계의 술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연간 6천만 병의 발렌타인이 팔려나간다. 1초에 2개씩 판매되는 셈이라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발렌타인은 맑고 깨끗한 스코틀랜드의 자연 속에서 자란 보리와 리벳강의 물을 원료로 한다. 발렌타인 위스키 원액의 품질은 여기서 나온다고 회사측은 소개한다. 원액은 스코틀랜드 전역에 흩어져 있는 증류소에서 얻어진다. 이를 엄선해 마스터 블렌더가 블렌딩함으로써 그 맛과 향이 결정되는 것이다.

발렌타인의 현 마스터 블렌더는 로버트 휙스다.

J섹션 조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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