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 드라마 끝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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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 국민 참여 경선이 중도에 막을 내릴 것인가. 자택에 칩거한 채 후보 사퇴 문제로 고심하는 이인제 고문의 모습 탓에 경선의 판은 조만간 깨질 듯한 위태로움을 더하고 있다. 흥행 대박을 터뜨려온 경선 드라마를 지켜보는 국민은 그의 퇴장 움직임에 당황하고 있다. 정치 변화의 묘미를 더 이상 맛보기 힘들 것 같다는 실망감, 우리 정치인들의 수준은 '최선을 다하는 흔쾌한 패배'같은 페어 플레이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는 개탄이 더해진다.

李고문의 고민과 저울질엔 여러 요소가 담겨 있을 것이다. 대세론에 안주했던 전략적 실수에 대한 회한, 거센 '노풍(盧風)'에는 청와대 쪽의 '보이지 않는 손'의 음모가 있을 것이란 의심, 경선 포기 때 쏟아질 여론 비판에 대한 두려움, 대전·충남에서 얻은 몰표를 탈당 등 다른 형태로 살려 보려는 유혹이 있을 수 있다. 李고문은 선택 카드에 명분과 실리를 나름대로 혼재해 내놓을 것이나 여론의 호응을 얼마만큼 얻을지는 미지수다. 그가 지난 대선 때 단 '경선 불복'의 부끄러운 꼬리표를 떼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정치인의 거취 결정에는 다수 국민이 인정할 만한 명분이 담겨야 한다. 물론 대선 경선 레이스에서도 중도 포기가 나올 수 있다. 그렇지만 경선 레이스가 중반에도 들어가지 않은 상황에서 '종합 1위'의 포기 움직임은 뭔가 석연치 않다. 판세가 불리한 쪽으로 기울기 전에 1위 상태에서 그만둬야 불공정 경선의 음모론을 키울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음모론의 실체는 보이지 않는 상태다. 때문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 16부작 새 정치 드라마를 완결지어 달라는 여론의 열망을 담은 시선을 음모론 쪽으로 돌릴 수 있을지는 지금으로선 의문이다.

李고문의 중대 결심이 어떤 선택으로 나타날지는 그의 몫이다. 그러나 거기엔 여론의 엄정한 평가와 책임도 따를 것이다. 李고문의 선택은 그의 정치적 장래뿐 아니라 민주당 경선의 운명도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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