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교실 '대입 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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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선 봉투에 담아 전달 휴대전화 수능부정 사건의 진원지인 광주 C고에서는 수능성적표를 노란 봉투에 담아 나눠줬다. 부정 행위로 시험이 무효 처리된 학생들에게는 성적표 없는 빈 봉투만 전달됐다. 타 학생들이 부정 연루자를 알 수 없도록 배려한 것이다.광주광역시=양광삼 기자

14일 오전 10시 서울 A여고 3학년 교실. 수능성적표를 손에 쥐고 있던 담임교사가 입을 열었다.

"수능과 관련해 언론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단어가 뭔지 아세요. '혼란'입니다. 지금 이 성적표로 진로를 결정하기에는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언어와 수리에서 똑같이 만점을 받아도 표준점수로는 15점 차이가 납니다. (벽에 붙은 배치표를 가리키며) 15점이면 대학이 3칸 차이입니다."

놀란 눈으로 "어머…"라고 외치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의 설명은 이어졌다.

"지난해엔 점수가 나오면 대학이 눈에 보였는데 올해는 그렇지 못해요. 우선 하고 싶은 게 뭔지, 무슨 과를 갈지 우선 정해야 합니다. 면담은 16일부터 나눠서 시작하겠습니다."

이날 수능성적표를 받아든 대부분의 고3 교실은 이 학교처럼 진로지도를 놓고 혼란 속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장 진학담당 교사와 수험생은 다른 학생의 성적과 비교할 수 있는 석차백분율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성적표에 제공된 표준점수와 백분위 중 자신에게 유리한 점수 반영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성적으로 최고의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전형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대학을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학생은 "우리가 새로운 입시제도의 실험 대상이 된 것"이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 표준점수 보고 '당황'=만점자가 많이 나온 사회.과학탐구 영역 등에서는 한두 문제만 실수해도 등급이 뚝 떨어졌다. 이 때문에 수시모집의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불합격 처리되는 학생이 속출했다.

이화여대 수시2학기에 조건부 합격했던 서울 B고 한 학생은 최저학력기준(2개 이상 영역에서 2등급)을 충족하지 못해 낙방했다. 담임교사는 "모의평가에서는 언어가 늘 2등급이었는데 이번에는 3등급으로 떨어졌고, 2등급 정도 나올 것으로 예상했던 사회탐구도 4등급이 나왔다"면서 답답해했다. 똑같이 만점을 받아도 과목별 난이도 차이 때문에 들쭉날쭉한 표준점수도 학생들을 당황하게 했다.

광주 송덕고의 이강재군은 "두 문제 틀린 사회문화의 표준점수가 만점을 받은 윤리.국사.한국지리보다 높게 나왔다"고 말했다. 고3인 안모양은 "평소보다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사회탐구 표준점수가 예상보다 안 나왔다"면서 "윤리는 3점짜리 하나, 2점짜리 하나 두 문제 틀렸는데 4등급이 됐다"면서 속상해했다. 한 고3 수험생은 "학교 차원에서 한국지리나 윤리 등을 선택한 경우 표준점수와 백분위 모두 다른 과목에 비해 좋지 않게 나와 거의 초상집 분위기"라고 전했다. 게다가 표준점수나 백분위, 등급표준점수와 같은 수능성적 반영방법이나 과목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10~20점이 뒤집힐 수도 있어 학생들은 더욱 초조해하고 있다.

◆ 안개 속 진학지도=일선 고교 교사들은 한결같이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정렬 이화여고 3학년 부장은 "수능성적이 원점수없이 표준점수와 백분위로 나오다 보니 이번에는 방향을 못잡고 있다"면서 "3학년 담임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한 뒤 다른 학교와 협력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임근수 한국교원대부속고 교사는 "자료가 없어 사실상 개점휴업"이라면서 "오늘 나온 성적을 바탕으로 사설학원 등에서 만든 배치표가 나올 때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하현옥.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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