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힘 키울 사회계약 만들자 : '선거의 해' 무엇을 이룰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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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우 리에게는 헌법만 있지 사회계약은 없다. 그것이 우리의 불안과 불안정의 주된 원인이다. 오늘의 우리사회가 처한 객관적 여건을 꼭 위기상황이라고 진단할 필요는 없다.

경기는 과열을 걱정할 정도라고 하지 않는가. 정치판의 전망이 혼미하다 해도 이제는 쿠데타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막연한 불안과 불길한 예감에 계속 시달리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국가는 있지만 공동체는 약하고 헌법은 있지만 사회계약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 공동체가 취약한 이유는 무엇보다 혹독한 시련으로 점철된 우리의 현대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35년에 걸친 주권상실과 식민지화의 암담한 시련 속에선 나라의 독립과 국권회복이 절대적 우선 목표가 되는 것이 당연하였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에는 건국이 우선 목표였고 분단상황 속에선 나라를 지키는 국가안보가 무엇보다 중요시 됐다. 따라서 우리의 사회공동체를 어떻게 발전시키느냐는 과제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 한 세대에 걸친 민주화 과정을 돌이켜 보아도 헌법적 기본권을 회복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졌지, 공동체의 향방에 대한 사회계약을 논의할 여유는 없었다. 권위주의정부 밑에선 어떻게 공정한 선거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냐가, 그리고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가장 시급한 목표일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김영삼·김대중 두 대통령의 집권으로 헌법적 기본권을 보장하는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통한 안정적 국가운영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는 체 우리사회는 통합보다 분열과 파편화의 경향이 심해지는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함재봉(咸在奉)교수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지난 반세기의 한국사는 '민족주의의 희석''민주주의의 유보''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왜곡'으로 성격 지워질 수 있다. 그것은 민족주의·민주주의·시장경제란 세 차원에서 한번도 국민적 선택을 통한 국민적 합의, 즉 사회계약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며, 국가는 있었지만 공동체는 없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계약이란 대체 무엇인가? 18세기로부터 시작된 서양의 시민혁명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루소·로크 등이 전개한 사회계약론은 법적 계약에 관한 이론이 아니다. 시민이 자유로이 참여하고 선택한 공동체에서 개인과 개인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 그리고 개인과 집단 사이의 권리와 의무를 어떻게 규정하고 정당화 하느냐에 관한 정치이론이다.

시민이 자유로이 선택한 공동체는 각 개인의 스스로와의 약속, 개인과 이웃과의 약속, 그리고 개인과 공동체와의 약속이 집합된 사회계약을 토대로 해야만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계약이 밑받침하지 못하는 국가체제는 설사 민주적 헌법을 지녔다하더라도 불안정의 늪에서 헤어나기 어렵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바로 우리의 불안정한 현황이 그에 해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 천년에 걸쳐 이 땅에서 함께 살아오며 피를 나눈 단일민족임에 틀림없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사회는 원초적 공동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와 이데올로기 시대의 시련을 거쳐 근대화·산업화·민주화·대중화의 격랑에 휩쓸리면서 그러한 원초적 일체감만으로는 공동체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막연한 애국심이나 민족감정, 그리고 수시로 발동하는 '국민정서'로는 건강하게 살아 숨쉬는 공동체를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이 국내적 갈등구조에서나 남북 대결구도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렇다면 우리사회를 생동하는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 국민적 노력은 어떻게 집결시킬 것인가. 2002년은 선거의 해다. 그것은 바로 '국민적 선택'의 해를 의미하는 것이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보다 우리 모두 함께 생동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아갈 길을 선택하는 기회임을 새삼 인식해야 한다. 국민 각자는 선택의 책임이 있으며 그 책임을 이행함으로써만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된다는 것을 이 '선택의 해'에 심각하게 생각해야 된다.

이것이 결코 추상적이며 원론적 지적이 아니라는 것은 지금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현안과 연계시켜 생각하면 곧바로 드러난다.

25명의 탈북자가 베이징의 스페인대사관으로 피신해 서울로까지 오게되는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였으며 이를 지켜보는 우리의 가슴 속에선 설레임과 기쁨·슬픔이 교차했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우리 동포인 탈북자에 대한 정확한 국민적 입장을 선택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는 아쉬움은 아무도 지워버릴 수 없다. 누가 우리의 동포이며 그들은 어떤 권리와 의무를 갖고 어떤 대우를 받아야할 것인가는 대한민국 헌법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대답하기 어려운 사항이다. 이 문제는 통일에 대한 국민적 선택과 합의로 이뤄진 민족공동체에 관한 사회계약이 있을 때만이 적절히 처리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몇 해 동안 '햇볕'을 강조하면서도 '민족공동체'란 어휘가 통일논의나 정책수립 과정에서 사라진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자유·평화·통일의 상호 관계를 규정하고 민족구성원인 동포의 복지, 특히 빈곤과 폭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하느냐는 과제는 민족공동체에 관한 국민적 합의가 있을 때만 유효하게 풀어갈 수 있으며, 바로 이번 선거의 해에 이 문제를 범국민적 논의와 관심의 초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민의 생존권과 결부된 정치는 정치인에게만 맡기기엔 너무나 중요하다. 예컨대 연일 난타전이 벌어지고 있는 정치자금 문제만 해도 정치권에서 스스로 해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깨끗한 사회, 깨끗한 정치를 구현하는 것은 전 국민의 책임이며 공동체의 과제이지 입법부 혼자서 해결할 수는 없다. 정치자금의 문제는 몇몇 시민단체의 노력에 의존하기보다 종교계·언론계 등이 앞장 선 국민적 선택과 이에 대한 대통령 지망생들의 확실한 입장 정리를 통해서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정치자금과 이에 연관된 부패를 정리하지 못한다면 국가적 민주화는 물론 공동체의 윤리는 돌이킬 수 없는 중태에 빠져버릴 것이다.

2002년을 깨끗한 정치를 위한 국민적 약속의 해로 선택한다면 국민 각자는 자기 스스로와 이웃과 공인(公人), 특히 정치인에 대한 감시의 눈을 크게 떠야 할 것이다.

오늘의 각박한 정치현실을 볼 때 선거의 해인 올해를 사회계약 원년으로 만들어보자는 희망은 한낱 환상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라만 있지 공동체는 없는 지금과 같은 허술한 상황으로 다시 5년·10년을 표류한다면 아무도 우리의 미래를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민족공동체를 만들어 갈 지도자를 찾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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