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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12> 축구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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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축구란 무엇인가』의 저자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은 “축구는 강요되지 않은 사물(공)과 자유로운 움직임(발)의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개념과 계산을 허용하지 않는 축구 경기에선 모든 일이 가능하며, 그래서 축구는 인생 자체의 은유가 된다”나요. 사람들이 만사 제치고 열광하는 이유는 축구엔 이렇듯 인생이 있고 드라마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기에 축구는 영화의 소재로도 애용됩니다. 남아공 월드컵을 맞아 국내 극장가에 개봉한 축구 영화를 소개합니다. 볼 만한 축구 영화 7편도 꼽아봤습니다.

기선민 기자

월드컵 ‘하프타임’에 볼 만한 몇 편, 다음 경기가 달라보일 걸요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 우승 이끈 한국인…짠하네

맨발의 꿈
감독 김태균
주연 박희순·고창석
등급 전체 관람가


동티모르의 히딩크, 동티모르의 한국인 축구 영웅이라. 이런 근사한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을 리가 없다. 김태균 감독의 ‘맨발의 꿈’은 2002년 사업을 하기 위해 동티모르를 찾았다가 그곳 아이들의 열망을 저버리지 못해 축구팀을 만들게 된 김신환 감독의 실화다. 축구화 살 돈이 없어 맨발로 뛰던 아이들이 유소년 축구단 결성 1년도 안 돼 제30회 리베리노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일궈낸 감동 스토리다. 구스마오 대통령까지 잠깐 출연하는 열성을 보였을 정도로 ‘맨발의 꿈’ 촬영을 둘러싼 동티모르 현지의 응원은 대단했다고 한다.

‘작전’ ‘10억’의 연기파 배우 박희순이 선수 생활을 접고 짝퉁 축구화를 파는 원광 역을 연기한다. 원광은 동티모르에 청운의 꿈을 품고 오지만 사기를 당한다. 우연히 길바닥에서 맨발로 공을 차는 아이들을 보고는 축구용품 판매점을 열지만 파리만 날린다.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노렸던 원광이지만, 점차 가난에서 탈출할 유일한 수단으로 축구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의 눈망울에 빠져든다.

감동 드라마의 전형적인 수순을 밟지만 지나친 눈물 짜내기를 자제한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 “사는 게 가난하다고 꿈까지 가난한 건 아니다”라고 원광이 말하는 장면이나, 두 골을 먼저 먹고 세 골을 마저 넣어 이기는 마지막 순간에는 절로 눈물을 훔치는 관객이 많을 듯. 현지어와 한국어, 영어를 섞어 아이들과 의사소통하는 박희순의 ‘원맨 토크쇼’에 가까운 열연은 박수를 보낼 만하다. ‘의형제’의 감초배우 고창석이 현지 한국영사관 직원으로 출연했다. 축구 하는 아이들은 놀랍게도 배우가 아니라 실제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이다. 연기 경험도 없고 말은 통하지 않지만 눈빛에 어린 진심과 열의는 프로 배우 이상이다. 상업영화 최초로 10일 유엔에서 300여 외교관이 모인 가운데 상영회를 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24일 개봉.

그라운드 안팎서 못 볼 것 보여준, 그는 ‘신의 손’

축구의 신 마라도나
감독 에밀 쿠스트리차
주연 디에고 아만도 마라도나·에밀 쿠스트리차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축구의 신’이라는 수식어로는 도저히 이 남자를 형용하기 부족하다. 디에고 아만도 마라도나(50). 이제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으로 뛰고 있는 그는 현역 시절 축구의 알파요, 오메가로 통했다. 특히 아르헨티나에서 그는 거의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 받는다. 마라도나의 생일 등 주요 기념일마다 종교의식을 거행하는 마라도나 교회가 있을 정도니. 폭력과 약물 복용 사건에 연루되고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는 등 인기에 걸맞게 험한 스캔들도 늘 뒤따라 다녔지만 팬들의 열광은 현재진행형이다. 대스타의 인생에 카메라를 들이댄 사람은 ‘언더그라운드’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 그는 “마라도나만큼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 사람도 없다”는 생각에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한다.

영화는 전설의 바나나킥을 비롯해 마라도나의 눈부신 득점 순간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치적 소신을 표출하는 데 서슴지 않았던 ‘행동하는 인간’ 마라도나를 발견하게 한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뒤에는 미국이 있다. 전쟁으로 돈 버는 건 CNN과 폭스TV” “(콜롬비아가) 코카인을 만든다고 불평하지만, 그 마약은 미국이 다 쓴다” “미국은 늘 우릴 짓밟는다. 늘 의존하게 만들고, 착한 척 (돈을) 빌려주고 10배로 돌려받는다”는 식의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유니폼 대신 ‘STOP BUSH’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반미 집회에 나가기도 했다.

‘마라도나교(敎)’ 신도들이라면 마라도나의 족적을 되짚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다가올 듯하다. 그가 데뷔전을 치른 곳이자 축구계의 샛별로 떠오른 곳인 라 봄보네라, 쿠스트리차의 고향이자 마라도나가 최고의 골잡이 실력을 과시했던 베오그라드, 하위권이던 팀을 세리에A 우승으로 끌어올렸던 나폴리 등을 두루 훑는다.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드라마적 흡인력은 덜하지만, 축구계의 살아 있는 전설을 조명한 첫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2008년 제61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작이다.



월드컵 시즌에 볼 만한 축구영화 7선

‘공은 둥글다’란 말, 이 영화 실제 배경서 나왔다지

베른의 기적(2004년)
감독 손케 보르트만
주연 루이스 클람로스·피터 로메이어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이룬 서독의 대역전 챔피언 스토리를 탄광촌 소년 마테스와 같은 마을 출신 축구선수 란을 통해 재구성했다. 당시 시드 배정도 받지 못하며 약체 팀으로 분류됐던 서독 축구팀은 천신만고 끝에 8강에 올랐고, 결승전에선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헝가리를 맞아 3대 2로 역전승을 거둔다. 헝가리는 당시 40연승 행진 중이었다. 가난에 허덕여 나치 깃발로 유니폼을 만들어 입고 뛰던 헝그리 정신의 승리였다. 이를 일컬어 ‘베른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베른의 기적’이 ‘라인강의 기적’의 정신적 토대로 이어졌다니 축구가 발휘하는 사회 통합의 힘은 놀랍기만 하다. 축구 얘기가 나올 때 단골로 인용되는 ‘공은 둥글다’라는 명언은 서독 우승을 이끈 감독 제프 헤르베르거가 당시 남긴 말이다.

20세기 최고 축구영화…람보와 펠레는 같은 편

승리의 탈출(1981년)
감독 존 휴스턴
주연 실베스터 스탤론·막스 폰 시도

많은 영화평론가들이 20세기 최고의 축구영화로 꼽는 걸작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정예 축구팀과 연합군 포로 팀의 경기가 열린다. 사나이들의 우정과 치밀한 계획, 탈출하기 위해선 승리해야 하는 자들의 절박함 등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축구 시합이 2차대전의 각축 구도를 반영하는 점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축구의 신 펠레의 출연이다. 그는 트리니타드 토바코 출신 축구선수로 나와 환상적인 발 놀림 등 신기(神技)를 과시한다. 당시 100만 달러의 개런티를 받고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원제 Victory.

66년 월드컵, 북한 축구에 혼쭐난 유럽 축구

천리마 축구단(2005년)
감독 대니얼 고든
주연 폴 니컬슨 외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에 걸렸던 ‘어게인(AGAIN) 1966’이라는 구호를 기억하는지. 그 시작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이었고 주인공은 북한 축구팀이었다. 북한 대표팀은 강호 이탈리아를 꺾고 16강에 진출했고, 8강전에선 포르투갈을 상대로 3대 0이라는 스코어를 기록하기까지 했다. 결국 3대 5로 역전패하긴 했지만 당시 북한 팀이 일으킨 파란은 실로 대단했다. 영국 감독 대니얼 고든이 만든 다큐멘터리 ‘천리마 축구단’에는 평균 신장 1m62㎝밖에 안 되는 북한 선수들이 일사불란한 공격 축구로 유럽 강호들을 꺾은 감격의 순간과 영국 축구팬들의 회고담이 꼼꼼하게 기록돼 있다. 축구가 ‘과업’이자 ‘전투’였던 이들이 일군 기적이다. “축구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잘 달리는 것. 그 다음이 잘 차는 것과 전술”이라고 했던 김일성 주석의 격려사에 대한 북한 팀 명려현 감독과 선수들의 증언도 들을 수 있다.

축구 보고 싶은 이란 여성…근데 수비가 만만찮군

오프사이드(2006년)
감독 자파르 파나히
주연 시마 모바락 샤히·샤예스테 이라니

이란 여성들에게 축구란 ‘금지된 유희’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지역 예선. 바레인과의 경기에서 이기면 이란은 월드컵에 출전하게 된다. 이 역사적 순간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싶은 여성 축구 팬들이 있다. 하지만 이란은 여성의 축구 경기장 입장을 공식적으로 금하고 있었다. 몰래 들어가려는 열혈 여성들과 검문을 맡은 군인들 사이에서 승강이가 벌어진다. 소녀들은 결국 경기장 밖 임시 울타리 안에 갇힌 채 이란 팀을 응원한다. 축구를 빌려왔지만 이슬람의 불합리한 남녀차별 문제를 고발하는 작품. 그렇다고 딱딱한 사회 고발 영화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축제와도 같은 해피 엔딩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금기를 넘어가려는 여성과 제도의 충돌을 ‘오프사이드’라는 축구 용어로 풀어간 점이 색다르다. 2006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편견을 차버려! 그나저나 베컴은 어디에?

슈팅 라이크 베컴(2002년)
감독 거린다 차다
주연 파민더 K 나그라·키라 나이틀리

베컴도 자랑스러워할 만한 영화. 축구장에서 펼쳐지는 성(性)과 인종의 정치학을 축구 하고 싶어하는 소녀들을 통해 경쾌하게 그렸다. 인도계 영국 소녀 제스가 “얌전히 있다 시집이나 가라”는 부모의 편견과 반대를 무릅쓰고 축구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여성 감독인 거린다 차다 감독은 잉글랜드 팀의 열렬한 팬.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온 국민이 공 하나에 울고 웃는 광경에 축구의 힘을 실감했던 그는 내친김에 축구영화까지 만들었다. 아쉽게도 베컴은 출연하지 않았고 대형 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

멕시코 축구 천재, 팀 찾아 삼만리

골!(2003년)
감독 대니 캐넌
주연 쿠노 베커·스티븐 딜레인

멕시코의 가난한 축구 천재가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하는 성공담. 전형적이지만 그러기에 훈훈한 맛이 있다. 열 살 소년 산티아고는 낡은 월드컵 사진을 품에 안고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향한다. 소년의 가슴에는 축구에 대한 열망이 타오르고 있었다. 전직 축구선수이자 스카우트 담당인 영국인 글렌이 LA의 한 경기에서 소년을 발견한다. 과연 소년의 꿈은 이루어질까.

히말라야 소년들 ‘축구는 역시 라이브로 봐야…’

컵(2000년)
감독 키엔츠 노부
주연 잠양 로드로·오르그옌 토브기알

98년 프랑스 월드컵이 열리자 지구상 가장 외딴 곳 중 하나인 히말라야의 한 사원에서도 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른다. 열혈축구팬인 소년 오기엔은 프랑스와 브라질의 결승전을 생중계로 보고 싶다며 스님들을 조른다. 놀랍게도 큰 스님의 허락이 떨어지고 소년들은 천신만고 끝에 사원에 TV를 설치하게 된다. 승복 안에 호나우두의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어린 수도승 등의 풍경은 월드컵이 왜 성과 인종과 종교를 초월한 지구촌 축제인지를 실감케 한다.

(도움말 주신 분=영화 칼럼니스트 김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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