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관치와 자율 사이 … KB금융이 살 길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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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원 학습 효과다.”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이 KB금융 회장 후보로 선출되는 과정을 지켜본 한 금융인의 표현이다. 지난해 12월 KB금융 회장 후보로 선출됐다 외압 논란 속에 물러난 강정원 국민은행장을 지켜보면서 KB금융 사외이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뜻이다. 사달을 겪어본 사외이사들은 이번엔 면접 대상자를 아예 현 정부와 관계가 있는 인물들로 채워놓았다. 금융자율과 관치금융의 기로에서 형식은 ‘자율’, 내용은 ‘관치’를 따른 셈이다. 야당에선 관치라고 비판하지만, 과거와 같은 적나라한 관치의 자국은 없다. KB금융 내부에서도 “불가피하다”는 반응이다. “적극 환영한다”는 직원도 많다. 올해 초 검사 일지 유출 등으로 금융감독원과의 갈등이 고조되던 때 한 국민은행 직원은 이렇게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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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어윤대씨 같은 힘센 사람이 회장으로 와서 외풍을 막아주면 좋겠어요. 실제 경영은 행장이 잘 챙기면 되는 겁니다.”

국민은행 노조도 “KB금융 사장과 은행장은 내부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요구할 뿐, 어 후보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이 없다. 힘센 사람이 왔으니 적어도 불필요한 간섭은 안 받을 것이란 기대다.

하지만 ‘힘센 사람’에겐 위험도 있다. 힘세다는 사람이 이어왔던 역대 KB금융 회장과 국민은행장, 꼭 뒤끝이 좋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초대 통합은행장이 된 김정태 행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감독 당국의 징계를 받고 물러났다. 뒤이은 강정원 행장, 지난해 12월 KB금융 회장 후보로 선출됐지만 중도하차했다. 올 10월 임기가 끝나는 그는 다음 달 금감원의 징계를 받아야 할 판이다. 초대 KB금융 회장인 황영기씨 역시 우리은행장 시절의 파생상품 투자손실 때문에 중징계를 받고 지난해 9월 사퇴했다.

정권이 바뀌고, 연임이 걸려 있는 시기에, 금융 당국의 검사나 징계로 물러났다는 유사점이 있다. 2년 반 후 정권이 바뀌면 지난 정권의 ‘힘센 사람’은 오히려 조직엔 ‘리스크(위험)’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동국대 강경훈(경영학) 교수는 “KB금융이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안정된 지배구조가 장기간 지속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CEO의 선임이나 진퇴를 놓고 조직이 흔들리는 현상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조직 내부에서 최고경영자(CEO) 후보를 일찍부터 키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직 국민은행 임원은 “국민은행이 합병은행으로 출범한 지 10년이 됐는데도 내부 행장을 배출한 적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뿌리가 약한 외부 출신 경영자들은 잠재적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내부 인재를 키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유력한 지배주주가 없는 포스코의 경우도 현 정부 출범 이후 이구택 회장이 돌연 사임했다. 하지만 내부 출신인 정준양 회장이 뒤를 이어 조직을 안정시켰다. 익명을 원한 금융계 관계자는 “새 회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후계자를 키우는 일”이라며 “차기 국민은행장과 KB금융 사장은 미래의 CEO를 양성한다는 관점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KB금융 회장이 내정된 날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는 기업·투자은행부문 대표에 인도 출신의 안수 제인(47)을 임명했다. 그는 도이체방크를 세계 채권시장의 강자로 부상시킨 인물로, 현 CEO인 요제프 아커만의 후임자로 거론된다. 아커만도 외국인(스위스)이다. 인사 기준은 국적도 정권과의 친소관계도 아닌, 능력과 전문성이라는 것이다. KB금융도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

김원배·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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