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물결 번지듯 평온한 일렁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강변에 깔린 조약돌처럼 잔잔하게 퍼져나가는 명상적이고 동양적인 평면. 조약돌처럼 보이는 형체 하나 하나는 작은 삼각형 스티로폼을 한지로 감싼 뒤 한지 끈으로 묶은 것이다.한지엔 옛 활자가 인쇄돼 있어 삼각형들은 고아한 문기(文氣)를 풍긴다.

수천개씩 촘촘히 박힌 삼각형들이 번져나가며 이루는 무늬가 주는 평온과 아득함. 한지 작가 전광영(58)씨의'Aggregation(집합)'연작에 대한 그간의 평이다.

50세가 될 때까지 무명이던 그는 집합 연작으로 해외 아트페어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국내에서도 스타급으로 급부상했다. 지난해엔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올해의 작가'가 되면서 대규모 초대전을 열어 위상을 재확인했다. 그로부터 일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전씨는 상당히 변화한 작품을 들고 관객들을 만난다. 27일부터 1개월간 서울 사간동 국제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여는 것.

변화는 형태와 색상 모두에서 보인다.직사각형의 캔버스 형태에서 탈피해 부채꼴이나 사다리꼴 등 유연한 곡선미와 예리한 대각선을 과감하게 수용한 것이 특징이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색상의 변화다.지난해 전시에서도 치자를 이용한 엷은 황토색이 화면에 간간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번엔 치자의 노란색, 쪽빛, 불그레한 오미자색 등 전통염료를 이용한 다양한 색상이 등장한다. 색채는 구성이 끝난 뒤 더해진 것이 아니라 사전에 하나 하나씩 한지를 물들인 것이어서 생경하지 않고 은은하게 안으로 스미는 효과를 낸다.

진하고 흐린 색상의 삼각형들이 번지듯이 배열되면서 그의 작품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평론가 오광수씨는 "보름날 밤 호수에 비치는 달빛처럼 푸르스름하게 번져나가는 빛이 있는가 하면 은은히 떠오르는 미명의 기운처럼 주위를 붉게 물들이기도 한다"고 묘사했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엔 예전의 깊은 맛이 줄어든 대신 좀더 현대적이고 장식적인 느낌이 강해졌다고나 할까.

작가는 "1백호 작품 하나에 스티로폼 조각 7천개가 들어간다. 매일 똑같은 것을 바라보면서'내 한계가 이것인가'하는 고민이 형태와 색상의 변화를 시도하게 했다"고 밝힌다.02-735-8449.

조현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