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배 첫 우승 홍익대 김성남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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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지난 18일 제50회 대통령배 전국남녀축구대회 결승전이 열린 부천 종합운동장.전반 8분 홍익대가 선취골을 넣은 뒤 반격에 나선 할렐루야는 홍익대 골문을 쉴새없이 두들겼다.

그러나 홍익대 김성남(48)감독은 여러차례 아슬아슬한 장면이 벌어질 때도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지도자가 고함을 지르고 설치면 선수들이 더 흥분하게 되더라고요. 작전 지시가 떨어진 후 경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전적으로 선수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홍익대 돌풍의 비결은 김감독의 '자율 축구'에 있었다.

고려대 감독을 그만두고 축구 방송 해설자 등으로 2년간 야인생활을 하던 김감독이 지난해 12월 사령탑을 맡을 당시 홍익대 축구부는 최악이었다. 선·후배간 갈등으로 주전급 선수를 포함한 12명이 축구화를 벗었다. 코치도 없었고 선수들의 사기는 바닥이었다.

한숨이 나왔지만 김감독은 우선 4학년 선배들을 불렀다.

"우리 팀은 지금 '싸락눈'이다. 기왕 고생하면서 운동하는데 이기고 싶지 않은가. 이기려면 '함박눈'처럼 선·후배가 똘똘 뭉쳐야 한다. 너희들이 모범을 보여라."

그리고는 선수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선수들의 몸과 마음 모두를 담금질했다. 김감독의 노력은 세달 만에 우승이라는 과실로 나타났다. 김감독은 당초 선수들에게 "앞으로 1년간은 배운다는 입장에서 각종 대회에 참가한다. 밑져야 본전이니 열심히만 하자"고 주문했다. 그러나 선수들은 대학과 실업의 강호를 잇따라 깨뜨리고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경신고·고려대를 거쳐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김감독은 '김정남의 동생' '김강남의 쌍둥이 동생'으로 많이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홍익대를 비롯, 인천대·고려대·올림픽 대표팀 등에서 쌓은 지도자 경력도 선수시절 못지 않게 화려하다.

그의 집안은 한국의 대표적 축구 명가다. 맏형은 김정남(60)울산 현대 감독, 쌍둥이 형은 중경고 김강남 감독이고 막내 김형남(46)씨도 프로축구 포철 선수 출신이다. 명가의 대를 이을 법한데 김감독은 아들에게 축구를 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축구를 하겠다는 아들을 말렸다고 한다.

"로봇처럼 운동만 할 줄 아는 선수를 만드는 우리나라 학교체육의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죠. 숙소에 여자친구를 데려오는 외국인 감독에게는 엄청난 돈을 주면서도 정작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꿈나무들은 부상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효창구장의 조악한 인조잔디에서 축구를 하는 현실이 암담하기도 하고요."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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