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 단속 : '깨끗한 도시'냐 '행정 폭력'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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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월드컵을 앞두고 '노점상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서울시가 이르면 이번 주말부터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노점상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다.

시는 "도심 미관과 시민 보행권 확보를 위해 단속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반면 노점상들은 "국제행사 때마다 희생양이 되고 있다"며 생존권 투쟁을 벌이고 있다.

◇단속=시는 오는 7월까지 넉달 동안 거리에 난립한 포장마차와 좌판·손수레·보따리상 등 1만8천여명에 대해 집중 단속을 한다.

서울올림픽(1988년)과 아시안게임(1992년)·아셈회의(2000년) 때처럼 1회성 단속에 그치지 않고 아예 불법 시설물을 모두 철거하고 노점상을 추방해 시민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는 지난달 12명으로 구성된 노점정비팀을 가동하고 조만간 6백여명의 대규모 단속반을 투입할 방침이다.

단속반에는 용역사원 1백여명이 포함된다.

시는 4월 말까지 ▶동대문운동장 주변▶종로2가▶신촌로터리▶강남일대 등 노점 영업 절대금지 지역의 포장마차 주인 등 2천8백여명을 집중 단속한다.

이어 지하철 입구, 버스·택시승강장, 횡단보도 주변 등에서 떡볶이·붕어빵 등을 파는 생계형 아줌마까지 모두 추방할 계획이다.

단속해도 버티면 도로 불법점유 과태료를 ㎡당 5만원씩 최고 50만원까지 물린다.

◇반발=서울 남대문 부근에서 5년째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는 장순자(61)씨는 "몸져 누운 남편 등 네 식구의 생계를 어떻게 해결하란 말이냐"며 흥분했다.

서울역 앞 과일 노점상 윤명갑(50)씨는 "외국인들에게 잘보이려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점상들의 밥줄을 끊으려는 것은 행정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5일과 14일 도심에서 노점상 4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대규모 항의 집회를 가졌던 전국노점상총연합(전노련)은 오는 28일에도 '생존권 수호 투쟁대회'를 열기로 하는 등 게릴라식 실력 행사에 나설 방침이다.

전노련은 싹쓸이 단속이 강행될 경우 전국 10개 월드컵 개최 도시에서 동시 다발로 항의 집회를 열 계획이다.

그러나 시가 단속에 나서지 않으면 자율질서대를 구성해 월드컵기간에는 영업을 중단하고 거리 청소를 하는 등 적극 협조키로 했다.

전노련 이필두(56)회장은 "노점상을 도심의 독특한 서민 문화로 인정해 떳떳하게 세금을 내고 장사할 수 있도록 양성화해 달라"고 호소했다.

◇대책=시는 노점상들의 생계보호를 위해 ▶무료 직업교육▶생업자금 융자▶공공근로·취로사업 우선 배정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생계형 노점상들은 당장 먹고 살기가 막막한 실정이다.

'마을만들기 전국네트워크' 최정한 사무처장은 "노점상들의 생계대책을 우선 마련한 뒤 단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며 "기업형 장사꾼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노점상 실명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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