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한가운데' 작가 루이제 린저 生의 저편으로 지다 : 90세로 독일서 他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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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소설 '생의 한가운데'로 한국 독자에게도 잘 알려진 독일 여류작가 루이제 린저가 17일 사망했다고 그의 아들 크리스토프 린저가 18일 발표했다. 90세. 그의 작품은 한국어 등 전세계 24개국 언어로 번역돼 5백만권 이상이 판매됐다.

◇반(反)나치 작가=전세계 독자에게 그의 이름은 참여작가와 동의어로 통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지만 반(反)교권(敎權)주의자였으며, 반파시스트인 동시에 철저한 사회주의자였다. 그만큼 현실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 1911년 4월 30일 독일 남부 바이에른에서 교사의 딸로 태어난 그는 뮌헨대학에서 심리학과 교육학을 공부한 뒤 35년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그러나 나치에 가입하기를 거부, 39년 교단에서 쫓겨났다.

39년 작곡가와 결혼한 그는 41년 처녀작 '파문'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문호 헤르만 헤세가 병상에서 찬사를 보낼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첫 남편은 정치적으로 불순하다는 이유로 징집돼 44년 러시아 전선에서 전사했다. 그도 작품 출간을 금지당했으며, 끊임없이 게슈타포(나치 비밀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결국 44년 10월 국가반역죄·군사력파괴죄로 구속돼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45년 사형집행 직전 독일이 항복한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이같은 경험은 작품 '옥중기'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50년 대표작인 '생의 한가운데'를 발표한 데 이어 '다니엘라'(52년)·'희생양'(55년)을 잇따라 발표,전후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미리암'(83년)·'아벨라르드의 사랑'(91년) 등도 수작으로 꼽힌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한스 크리스티안 마이저와 공저로 3년 전 출판한 '순수와 환희'였다. 그는 54년 유명작곡가 칼 오르프와 재혼했지만 5년 뒤 파경을 맞는 등 사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루이제 린저는 80세가 넘은 나이에 달라이 라마를 만나기 위해 히말라야를 방문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의 '정치적 동반자'로 불리던 그는 84년 녹색당 후보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낙선한 적도 있다. 65년부터 이탈리아 로마 근교 로카 디 파파에 거주하다 말년은 고향인 바이에른에서 보냈다.

◇친(親)김일성 논란=반핵·여권신장·평화운동 등 꾸준히 정치적 목소리를 내온 루이제 린저는 특히 냉전시대에 북한을 10여차례 여행하면서 김일성과 친분을 쌓은 작가로 유명하다.

국내에도 번역된 북한인상기('북한이야기''고향잃은 우리들')에서 김일성과 북한사회를 일방적으로 찬양해 한국은 물론 유럽 사회에서도 "몰상식하다" "테러의 옹호자" "독재체제 지지자"란 비난을 들었다. 그는 김일성을 "평화밖에 모르는 지도자"로 묘사했으며, "북한 어느 곳에도 감옥은 없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 대해서도 자신의 저서를 통해 "아버지(김일성)의 아들이라는 신분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현재 위치에 오른 사람""아버지보다 여리고 음악적인 사람"이라고 호의적으로 묘사했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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